널다리 건너 개심사(開心寺)에 갔습니다
산속으로 난 찻길 버리고
세심동(洗心洞) 개심사(開心寺) 입구에서부터
돌계단 108개쯤 밟고 갔습니다
세심(洗心), 개심(開心) 하는 일이
어디 쉬운 노릇입니까
외나무 널다리 건너는 일만큼만
된다면야
밤새 건너고 또 건너겠지만
나이 들면 마음에도
겹겹의 기름때가 들어차
뜻대로 씻어낼 수 없으니
씻을 마음, 고칠 마음 그냥
챙겨 안고 돌아가는 하산길
골 너머 마애삼존불
왜, 날 보고 웃음 흘리십니까
- 마음 고치려다 / 이명수
고향 마을 뒷산에 안심사(安心寺)라는 절이 있었다. 사월 초파일이면 깨끗한 흰 옷으로 갈아입으신 할머니, 일 년에 한 번절에 가셨다. 할머니 따라가던 산길, 잔칫날 같던 절집의 북적거림,우리 꼬마들은 덩달아 신이 나서동무들과 어울리며 하루 종일뛰어다녔다. 마음을 씻을 생각도, 편안히 할 생각도 하지 않았던 그때가 좋았다.
이제 나이 들어 찾아가는 절집, 개심사 돌계단을 오르며 기름때가 잔뜩 들어찬이 마음을 생각한다. '개심(開心)'이라는 이름을 되뇌며 마음을 열어보려 고치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애쓰면 애쓸수록 도리어 또 하나의 때를 덧붙이는 짓인지도 모른다. 그래도골 너머 마애삼존불, 미소 지으시며 어여삐 바라보신다. "그래 됐다. 그걸로 족하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엄마 걱정 / 기형도 (0) | 2009.05.09 |
---|---|
저 못된 것들 / 이재무 (0) | 2009.05.06 |
하늘밥도둑 / 심호택 (0) | 2009.04.26 |
마지막 뉴스 / 서정홍 (0) | 2009.04.23 |
살그머니 / 강은교 (0) | 2009.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