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마음 고치려다 / 이명수

샌. 2009. 4. 30. 10:33

널다리 건너 개심사(開心寺)에 갔습니다

산속으로 난 찻길 버리고

세심동(洗心洞) 개심사(開心寺) 입구에서부터

돌계단 108개쯤 밟고 갔습니다

세심(洗心), 개심(開心) 하는 일이

어디 쉬운 노릇입니까

외나무 널다리 건너는 일만큼만

된다면야

밤새 건너고 또 건너겠지만

나이 들면 마음에도

겹겹의 기름때가 들어차

뜻대로 씻어낼 수 없으니

씻을 마음, 고칠 마음 그냥

챙겨 안고 돌아가는 하산길

골 너머 마애삼존불

왜, 날 보고 웃음 흘리십니까

 

- 마음 고치려다 / 이명수

 

고향 마을 뒷산에 안심사(安心寺)라는 절이 있었다. 사월 초파일이면 깨끗한 흰 옷으로 갈아입으신 할머니, 일 년에 한 번절에 가셨다. 할머니 따라가던 산길, 잔칫날 같던 절집의 북적거림,우리 꼬마들은 덩달아 신이 나서동무들과 어울리며 하루 종일뛰어다녔다. 마음을 씻을 생각도, 편안히 할 생각도 하지 않았던 그때가 좋았다.

 

이제 나이 들어 찾아가는 절집, 개심사 돌계단을 오르며 기름때가 잔뜩 들어찬이 마음을 생각한다. '개심(開心)'이라는 이름을 되뇌며 마음을 열어보려 고치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애쓰면 애쓸수록 도리어 또 하나의 때를 덧붙이는 짓인지도 모른다. 그래도골 너머 마애삼존불, 미소 지으시며 어여삐 바라보신다. "그래 됐다. 그걸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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