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대 중반에 디스크 수술을 받은 후 허리에 좋다고 의사가 권하여 1 년여 수영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덕분인지 허리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지금까지 아무 이상 없이 잘 지내고 있다. 그러나 늘 물과 가까이 했던 탓인지 불가피하게 귓병이 생겨서 얼마 전까지도 고생하고 있었다. 염증은 오른쪽이 더 심했는데 귓속이 가렵고 진물이 나오는 증상이었다. 특히 여름이면 더해지는데 심할 때는 잠을 설치기도 했다. 그래서 오른쪽 귀는 늘 축축하고 지저분한 귀지로 덮여 있었다.
여러 차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그때뿐이고 다시 재발하는 바람에 완치는 거의 포기했다. 병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이놈과는 평생을 데리고 살아야 할 친구로 여기기로 했다. 그런 친구 중에 또 하나가 무좀이 있다. 군대에 다녀온 뒤에 생긴 것이니 역사로 치면 제일 오래된 놈이다. 이놈은 떼어내려 어지간히 애를 썼지만 두 손을 들었다. 안 써본 민간요법이 없었다. 내가 아는 한 가장 끈질긴 놈이 무좀인 것 같다. 무좀에 비하면 귀의 염증은 차라리 애교라 할 수 있는데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가려워서 견디기 어려울 때는 연고를 바르는데 그러면 며칠 동안은 괜찮아진다. 그런데 이번 가을에는 상태가 심해져 약도 잘 듣지 않았다. 아마 약에도 내성이 생겼던 것 같다. 밤에 누워있으면 귓속에서 진물이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면서 간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속는 셈치고 집 옆에 있는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이사를 오고난 뒤에는 처음 찾아간 병원이었다.
귓속을 치료받고 주사 맞고 적외선을 쪼인 뒤 약국에서 약을 받아 나오는 것이 이제까지의 치료 과정이었다. 오랜 시간 치료해 주고 약도 많이 주면 좋은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병원에서는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대수롭지 않은 듯 별 치료도 없고 그저 “귓속을 후비지 마세요!”가 유일한 처방이었다. 주사도 약도 없었다. 연고를 바르지 않아도 되겠느냐고 물으니 필요 없다고 했다. 처음에는 뭐 이런 성의 없는 의사가 다 있나 싶었다. 그래도 속는 셈 치고 며칠 병원에 다니며 오직 귀만 만지지 않기로 작정했다. 평상시대로 많이 간지러웠지만 절대로 손을 대지는 않았다. 약을 바를 일이 없으니 귀 속을 건드릴 이유도 없었다.
또 하나 귀에 물이 들어가는 것이 가장 조심해야 할 일이었다. 그동안은 샤워를 할 때 귀를 솜으로 막기도 하고 비닐을 쓰기도 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전에 의사들에게 물어도 조심하라고 할 뿐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의사는 샤워 후에는 꼭 헤어드라이기로 귓속을 말리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그대로 해 보니 효과 만점이었고 귀 상태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결국 물기를 조심하고 손을 안 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한 달 이상 아무 이상이 없으니 내 귀는 드디어 완치 단계에 이른 것 같다. 앞으로도 손을 대는 것만 조심한다면 다시 재발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귀가 깨끗해지니 너무나 기분이 좋고 상쾌하다. 여러 가지 약을 써도 효과가 없었는데 그대로 가만 두니 어느 순간에 병이 나았다. 그동안은 약을 바른다고 하면서 도리어 자연치유력을 방해했던 것이다. 약을 바른다고 귀를 후비고 귀지를 파낸다고 후비고 가렵다고 후벼댔으니 안 그래도 약해진 피부가 아물 날이 없었을 것이다. 약을 바르는 것보다 만지지 않는 게 더 중요했다. 이렇게 간단하게 치료되는 것을 엉뚱하게 생고생한 귀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머리가 나쁘면 수족이 고생한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그냥 가만히 두는 게 최선의 방법인 것이 귀만은 아닐 것이다. 쓸데없이 신경 쓰고 간섭하다가 도리어 역효과를 보는 일이 의외로 많다. 특히 인간의 자연에 대한 태도에서 그런 걸 느낀다.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은 대부분이 자연의 조화와 질서를 방해한다. 자연보호라는 오만한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이 그러하다. 또 교육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스스로의 내적 생명력으로 자라게 되어 있다. 아이들은 훈육의 대상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간섭하고 과다한 짐을 지움으로써 아이들의 정신을 병들게 한다. 아이의 내부에서 꽃 피워나려는 생명력을 짓밟고 기성 체제의 틀 안으로 집어넣으려는 현 교육 제도의 병폐가 교실 붕괴로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때는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손을 대는 것이 도리어 군더더기 짓이고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헤어나려 발버둥친들 어쩌면 더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 뿐이다. 가만히 기다리면 물도 고요해지고 진흙도 가라앉는다. 오늘은 비틀즈의 ‘Let It Be’를 들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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