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해직교사의 마지막 편지

샌. 2008. 12. 15. 10:54

MB 정권이 들어선 이래 교육계에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10 월에 실시된 초등학교 일제고사를 거부하도록 권유했다는 이유로 7 명의 교사에게 파면과 해임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초등학생들에까지 전국 단위의 일제고사를 치르는 것은 교육의 본질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회의를 가질 수 있는 문제다. 국제중이나 자립형 사립고 등으로평준화의 틀이 무너지고 있는 마당에 초등학교의 일제고사 실시는입시 광풍을 정부가 나서서 부채질하는 꼴이다. 학업 성취도 평가라는 명분은 단지 허울일 뿐이고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경쟁에 길들이고 학생과 학교를 줄세우기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가 없다.

역사는 반복된다지만 지금은 다시옛날의 독재시대로 회귀하는 것 같다. 앞으로 정부의 말을 안 들으면 이렇게 된다는 식의 시범 케이스인 양 얼토당토 않게 일제고사를 거부한 교사를 파면시켰다. 이유는 명령 불복종이란다. 제자를 성추행한 파렴치범도 정직 몇 개월 정도의 가벼운 징계를 내리면서 일제고사에 대한 학부모나 학생의 선택권을 존중해준 교사에게 파면 처분을 내린 것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건의 전말을 보면 교사가 강제로 학생들에게 일제교사를 못 보게 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 사건은 여론몰이를 통한 전교조 죽이기의 일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얼마 전에는 고등학교 근현대사 교과서 문제가 불거져서 학교가 소란스러웠다. 이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이미 결정된 교과서를 바꾸라는 지시를 내려보낸 것이다. 내년도 교과서는 이미 1 학기 때 교사들이 협의하여 결정되어 있는 상태였다.상급 기관의 지시에 눈치를 봐야 하는 교장과 일선 교사들 사이에 또 한 바탕 갈등이 벌어졌다. 이번의 교과서 교체 문제는 누가 봐도 비상식적이고 비교육적인 조치였다. 교과서 내용이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좌로 편향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차치하고라도, 절차를 무시하고 진행된 이번 행태는 이 정권의 본질이 어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인테넷에 파면 당한 교사의 마지막 편지가 회람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물론 이 교사의 처신에 대해비판을 할 수도 있다.얼마 전에는 지하철을 탔는데 경로석에 앉아 있는 노인분들이 아이들에게 시험을 못 보게 하는 선생도 있다며 빨갱이라고 하는 걸 들었다. 그러나 그 젊은 교사가 무엇을 고민하고어떻게 살려고 애쓰는지 내 손녀처럼 따스하게 바라봐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래 글은 지난 10 월에 실시된 일제고사 전에교사가 학부모들에게 보낸 가정통신문의 내용이다.

학부모님께


-10월 14, 15일 치러질 전국 학업성취도 평가와 관련하여-


재작년 2학년 담임할 때 일입니다. "선생님, 이호 받아쓰기 하나도 못 썼어요." 같은 모둠 재희가 얘기해주었습니다. 이호는 책상을 끌어안고 공책을 가린 채 엎드려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이호가 뭔가 큰 잘못이라도 한듯 계속 "야! 빨리내. 뭐하냐." 이러는데, 순간 고개를 살짝 든 이호의 눈에는 눈물이 벌써 그렁그렁 맺혀 있었습니다. 이 아이, 벌써 마음 속에는 '난 못난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라고 스스로 주눅 들어 있는 거지요.


지금 우리 반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원 평가나 수행 평가를 치르고 채점된 시험지를 받아든 아이들 모습은 각양각색입니다. 소리가 크고 떠들썩한 아이들은 그래도 제법 결과에 자신 있는 아이들이지요. 결과에 주눅이 든 아이들은 소리 없이 시험지를 안 보이는 곳에 숨겨 넣기 바쁩니다.


좋지 않은, 기대 이하인 결과에 대한 반성은 어떤 때에는 좋은 자극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늘상 비교당하고, 경쟁에 시달리게 되면, 그것은 자극이 아니라 스트레스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어차피 나는 무능력한 사람'으로 스스로 낙인찍게 되지요. 결과적으로 학습에 더 좋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사소한 시험에도 점수를 비교하고 스스로 낙인찍고, 친구들을 놀리거나 부러워하는데, 전국 단위의 시험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모두들 챙기는 일제고사 같은 큰 시험이 있으면 학원에서는 한 달 전부터 주말특강에 들어가고, 2주전부터는 연장보충수업을 합니다. 학원 안 다니는 아이는 반에서 열손가락 안에 꼽는데, 그 아이들도 공부를 덜 강요받는다 뿐이지 시험에 대한 부담과 스트레스는 똑같습니다.


이렇게 학교는 왔다갔다 하고 학원에 매달려 한번씩 시험보고나면 일찌감치 공부와 담을 쌓아서 관심 없는 아이들, 공부하면서도 늘 자신 없어 하는 아이들, 이 학원 저 학원에서 공부하며 1등 하려는 아이들, 모두 예민하고 냉소적인 분위기가 오가고 그러면서 부정적 자아가 형성됩니다. 시험의 결과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쉽게 규정해버리고 '미래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한정지어 버립니다.


평가의 원래 목적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함입니다. 학습의 결손 부분을 확인하고, 모자란 부분은 앞으로 채워나가기 위한 하나의 도구입니다. 하지만 평가가 '나의 성적'을 '다른 학생'과 비교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질 때, 그것은 교육적 효과를 넘어서는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됩니다.


머지 않아 10월 14, 15일에는 전국적으로 6학년 학업성취도 평가를 치르게 됩니다. 전국단위의 평가이고, 성적이 어느 수준에 해당되는지 결과도 공개되는 시험입니다. 벌써부터 학원가는 일제고사 준비에 여념이 없으며, 이에 불안해지는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부담을 다시 고민하게 됩니다. 6학년 담임교사로서 저는 이렇게 교육적 목적이 불분명한 시험에 우리 아이들 전부를 몰아넣어야 하는 상황에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경쟁에 찌들리는 아이들의 현실에, 치솟는 물가에 늘어만가는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는 학부모님들 현실에도 마음이 아픕니다.


흔히 교육의 주체는 교사-학생-학부모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교육정책에 대해, 가장 큰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교사, 학생, 학부모들의 목소리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제넘지만 제가 이 글을 학부모님께 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아레에 전국단위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한 응시 동의서를 보냅니다. 제 교육적 소신으로는 평가를 하고 싶지 않지만, 학부모님과 학생들의 의견이 중요하겠기에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시험은 동의하신 학부모님 자녀에 한해서만 치르게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시험을 치르지 않는 학생에게는 14,15일 대체할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개별적으로 연락을 드릴 것입니다. 전국의 6학년이라면 모두 치른다는 시험을 보지 않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란 것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교육현실에 이런 동의서를 학부모님께 전할 수 밖에 없는 저 역시 쉽지 않은 상황임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제 뜻이 왜곡되지 않고, 학부모님과 아이들에게 전달될 수만 있다면 좋겠습니다.


시험을 보게 한다 해도, 담임교사인 제 뜻과 다르다고 해서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에 이렇게 시행되는 전국일제고사에 많은 교사와, 많은 시민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을 알아주시기만 해도 좋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잘 이야기 나눠 보시고, 아래 동의서 회신 부탁드립니다.


담임교사드림

교육청에서는 입만 열면 학부모와 학생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강조했다. 이 교사의 가정통신문은 누가 봐도 일제고사 거부를 선동한 것이 아니다. 일제고사에 대한 자신의 교육적 소신을 밝히고 그 결정은 학부모와 학생의 선택에 맡겼다. 이런 식의 일제고사에 대한 문제 의식은 교직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일제고사가전국적인 학생들의 성취도 측정하기 위한 것이라면 지금처럼 각 학교별로 표본 학급을 선발하여 시험을 치러도 아무 문제가 없다. 많은 돈과 시간을 낭비하면서 이런 식의시험이 과연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고등학교에서는 많은 학생들이 내신에 들어가지 않는 이런 시험에 대해 관심이 없다. 문제는 그저 대충 풀고 잠을 자는 게 다반사다. 그리고 이 자료가 학교간 비교 자료로 공개된다면 그 부작용 또한 만만치가 않다. 이미 일부 사립학교에서는 이 시험에 대비해 특별 수업까지 실시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당국자로서는 학교간 경쟁을 유도하는 게 목적일지 모르지만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방해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시험 결과가 대학 입학 결과와 함께 학부모들이 학교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번 사태에서 파면을 받은한 교사는 다음과 같은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20 년 전에도 수많은 동료 교사들이 전교조 창립 과정에서 해직을 당했다. 교단에 버티고 있으면서 살아남은 자의 비애를 느꼈던 나는 이번에도 그때와 비슷한 암담함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 해임을 앞둔 마지막 글 >


처음 일제고사에 대해 아이들과 함께 고민할 때부터,

아고라에 글을 올리고 댓글을 통해 많은 격려를 받아왔는데

당당히 싸워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되었음이, 너무나도 가슴이 아픕니다


내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조퇴를 쓰고,

한 시에 있을 기자회견을 위해

서울시 교육청으로 가야해요.


징계 통보를 받을 방학 전까지는 아마,

학교에 나갈 수 있겠지만


방학을 하고 난 2월, 그리고 아이들 졸업식에는

함께 하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잠도 오지 않는 이 밤에 마지막 편지를 썼어요.


쓰면서, 울면서,

그렇게 편지를 다 쓰고,

멍하니 컴퓨터 앞에 앉아있습니다.


아이가 뉴스를 보고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어어엉 하며 전화기를 붙들고 큰 소리로 울어버리더라구요


'그래, 난 당당해.'

'혼자가 아니니까 괜찮아.'

하고 억지로 참았던 울음이,

그 아이 울음소리에 그만 터져나오고 말았어요.


"선생님 우리 그럼 헤어져야 하는 거잖아요.

졸업해도 나는 선생님 찾아갈려고 했는데

그래서 중학교 가서 교복 입은 모습 보여드리려고 했는데"


아,

어찌해야 하나요

내일 학교에 가서 아이들 얼굴을 어찌 봐야 할까요.


그저, 가슴이 먹먹할 뿐


알려주세요.

알려주세요.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어머님들께 드리기 위해 쓴 마지막 편지 올려봅니다.



< 어머님들께 드리는 마지막 편지 >


처음 아이들을 만나던 날이 생각납니다.

혹시나 첫날 만났는데 교실이 어지러울까

전날 아이들 만날 교실에서 정성껏 청소를 하고

꿈에 부풀어, 가슴 설레이며, 아이들 책상 위에 꽃을 올려두었지요.

음악을 틀고, 추운 몸을 덥혀주려고 정성껏 물을 끓여두었습니다.

하나, 둘, 자리를 채운 반짝이는 눈동자들을 앞에 두고

저는 '인연'에 대해 이야기 들려주었어요.

너무나 소중한 인연이라고, 억 겁의 인연이라고


그렇게, 처음 만났고,

이 좁은 교실에서 일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는 동안

먹고, 뒹굴고, 한 몸 같이 지내던 시간.

그 시간들을 뒤로 하고

이제 눈물로 헤어져야만 하게 되었음을 전하는 지금 제 마음을

차마 이 몇 글자 속에 담아낼 수가 없네요.


어제 오후, 저는 서울시 교육청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습니다.

교직에 처음 발 디딘 지 이제 3년.

해마다 만나는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에

만약 신이 계시다면, 내게 이 직업을 주셨음에

하루하루 감사하던 나날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서 이제 서울시 교육청이,

제 아이들을 빼앗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해임의 이유는,

성실의무 위반, 명령 불복종이랍니다.

제가 너무 이 시대를 우습게 보았나 봅니다.

적어도 상식은 살아있는 곳이라고, 그렇게 믿고싶었는데.

옳지 못한 것에는 굴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이를 앙 다물고 버텼는데.

시대에 배신당한 이 마음이 너무나 사무치게 저려옵니다.


'그러게 조용히 살지.'

왜 그렇게 살지 못했을까요?

이 아이들 앞에서 떳떳하고 싶었어요.

학원에 찌들어 나보다 더 바쁜 아이들에게,

시험 점수 잘못 나올까 늘 작아지는 아이들에게,

더 이상 우리 서로 짓밟고 경쟁하지 말자고

우리에게도 당당히 자기 의견 말할 권리가 있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후회하느냐구요?

아니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양심있는 사람들이 살기엔 너무나도

잔인하고 폭력적이었음을 새삼 깨달으며,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명령에 복종하며 바닥을 기기보다는

교육자로서 당당하게, 양심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해봅니다.


그럼에도 다시 후회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이 폭력의 시대를 알아보지 못하고

조용히, 입 다물고 살지 못하고

이렇게 무력하게 아이들을 빼앗기는 이 모습이

가슴이 터지도록 후회스럽습니다.


울고, 웃고, 화내고, 떠들고, 뒹굴며

늘 함께했던

아이들만이 유일한 삶의 희망이었던 저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저 먹먹한 가슴 부여잡고 눈물을 삼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이들 서른 둘 얼굴이 하나하나 눈 앞을 스쳐 지나가

눈물이 쏟아져 화면이 뿌옇습니다

이렇게 아끼는 내 자식들을 두고

내가 이곳을 어떻게 떠나야 할까

졸업식 앞두고 이 아이들 앞에서

하얀 장갑을 끼고 졸업장을 주는 것은

저였으면 했는데

문집 만들자고, 마무리 잔치 하자고,

하루종일 뛰어 놀자고,

그렇게 아이들과 약속했는데


죄송합니다.

이렇게 떠나야만 하는 마음,

꼭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더러운 시대 앞에

굴하지 않은 가슴 뜨거운 한 사람이 있었다고,

그렇게 여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08년 12월 11일 목요일 담임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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