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참살이 공동체의 성공 조건

샌. 2008. 11. 5. 13:11

누구나 한 번씩은 이상적인 공동체에 대한 꿈을 꾸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유토피아적인 공상에 그치지만 극소수의 사람은 그 꿈을 현실로 옮기기도 한다. 그러나 공동체에 대한 시도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실패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도 일정 기간 지속될 수 있는 것은 강력한 종교적 유대로 묶여진 공동체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아미쉬 공동체라 할 수 있다. 특수한 경우지만 수백 년간 지속되는 수도 공동체도 있고, 이스라엘의 키부츠 역시 유대교라는 신앙의 바탕에서 발전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순수한 종교적 목적이 아닌 보편적인 참살이를 위한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갈망도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를 뛰어넘는 제 3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대두된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가장 화급한 문제일 수도 있다. 자본이나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급공동체에 대한 시도는 지금도 여기저기서 계속되고 있다. 현대의 물신주의와 개인주의를 넘어서는 인간 중심의 마을공동체는 참살이의 꿈을 가진 사람이라면 관심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기에 대한 모델이나 성공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비슷한 이상을 가지고 시작한 일부 공동체들도 초기의 이상이 그대로 실현되는 곳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젊었을 때 작은 종교적 공동체를 접해 본 이래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적 삶에 대한 관심이 나 역시 많았다. 그런 공동체적 삶이 내 꿈이기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공동체들이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이나 이념 충돌로 실패하게 되는 경우를 보면서, 또 짧지만 작은 경험을 하면서 공동체에 대한 환상은 많이 사라졌다. 지금은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성의 벽을 넘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공동체의 실패는 그런 인간성의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나는 본다. 그러므로 지금은 공동체적 삶보다는 개인적인 삶의 성취에 더 관심이 있다.


그래도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공동체가 성공하기 위한 요소를 어느 분이 세 가지로 정리한 것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이 셋은 필수 조건이라 어느 하나가 부족해도 공동체는 붕괴되고 만다고 한다. 첫째는, 종교나 철학 등의 가치관의 공유가 있어야 한다. 둘째는, 공동체의 유지에 필요한 생활의 기술, 특히 농업기술이 있어야 한다. 셋째는, 살아가는 기쁨의 표현인 예술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이 분은 종교, 농업, 예술을 똑 같은 비중으로 취급했다. 이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되면 공동체는 분열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종교와 농업과 예술, 즉 기도하는 것, 경작하는 것, 표현하는 것이 분업화되지 않고 한 사람 안에서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공동체의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종교가며 농민이며 예술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분은 평생을 공동체운동에 관여해 왔는데, 그런 실제적인 경험에서 나온 일리 있는 설명이라고 느껴졌다.


공동체도 결국은 사람의 문제로 귀결된다. 공동체가 내세운 기치나 이념도 중요하지만 공동체 구성원들의 인간됨과 삶의 방식이 문제다. 기도하고, 경작하고, 표현하는 인간적 삶의 기본에 충실하며 검약에 바탕을 두어야 참살이 공동체는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자면 구성원의 숫자 또한 제한될 수밖에 없다. 뜻을 같이 하는 소규모의 자립적인 공동체들이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자본 중심의 세상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식이 아닐까 싶다. 의식 있는 농민이나 귀농한 사람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형성되는 그런 공동체를 상상해 본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참살이 공동체의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 변화를 희망하기 이전에 우선 나 자신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