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B 선배의 귀농

샌. 2008. 10. 15. 15:45

선배 B가 내 고향 가까이로 귀농을 했다. 내 고향집에서 약 4 km 정도 떨어져 있으니 멀다고는 할 수 없다. 벌써 3 년째가 되었다는데 이제야 소식을 듣고 만나볼 수 있었다. 소백산 자락에 3만여 평의 터를 마련하고 밭농사와 숲 가꾸기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밭에는 주로 과수나무를 심었고, 산에도 유실수와 산나물을 중심으로 묘목을 심고 씨를 뿌리며 기초 터전을 닦고 있다고 했다.


선배는 인상이 이미 농군이 다 되어 있었다. 대학생이었을 때도 농촌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인연을 맺더니 직장도 농촌으로 돌아다니며 영 도시와는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여러 곳을 다니다가 이곳에 택지를 하고 정착하게 되었는데, 명예퇴직을 한 선배는 드디어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다. 가족에 대해서 물어보니 아직은 본인 혼자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부인과 아이들은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영 시골로 내려오려 하지 않는다고 허허 웃었다.


농촌에서의 여유 있는 은퇴 후 생활이 아니라 선배는 온전히 농사일에 올인하고 있었다. 앞으로 회원을 모집하여 농장을 꾸려가고 싶다는 꿈도 밝혔다. 선배의 말과 표정에서는 자신감과 생활의 기쁨이 배여 있어 나를 더욱 부럽게 했다. 이 선배를 우연히 만나게 된 것도 나에게는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얼마 뒤면 나 역시 고향으로 내려갈 것 같은데 그때에는 선배에게서 배울 바가 많을 것 같기 때문이다.


요즈음 들어 빨리 명퇴를 하고 전원 속에 묻히고 싶은 생각이 부쩍 다시 든다. 일상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말이 아니다. 직장에서는 내 능력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상황을 벗어난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리고 어떤 때는 내 처지가 너무나 처량하게 느껴져 30 년 이상 근무한 직장이지만 미련 없이 떠나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 집사람의 동의만 받는다면 지금이라도 그만 두고 싶은 심정이다.


그만 두면 무엇을 할 거냐고 사람들은 묻는다. 예전에 어디선가 보았던 기억이 난다. 어느 분의 인터뷰에서 퇴직한 후 무엇을 할 계획이냐고 기자가 물었다. 그분의 대답이 자신은 아무 계획이 없기 때문에 행복하고 미래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지금 그 말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당시에 감동을 받았던 것 같다. 지금 심정도 비슷하다. 거창한 노후 계획이 아니라 아무 목적도 없는, 할 일이 없는 자유를 당분간은 누리고 싶다.


고향에 내려가면 B 선배의 농장을 찾아가볼 예정이다. 도저히 선배처럼 살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선배의 건강함과 활기의 몇 분의 일이나마 닮아가고 싶다. 여기서는 전혀 그럴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순수한 꿈은 언젠가는 이루어진다고 했다. 인간의 소동에서 떨어진 나만의 터에서 조용히 내 취향대로 살아갈 날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