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고치령을 넘다

샌. 2008. 10. 19. 19:29

친지 결혼식에 참석하러 고향에 가는 길에 고치령을 넘어가기로 했다. 고치령(古峙嶺)은 소백산으로 갈라져 있는 충북 단양군 영춘면과 경북 영주시 단산면을 연결하는 옛길이다. 길이 워낙 불편하여 지금은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작년에는 이웃한 마구령을 넘어 보았는데 올해는 고치령을 넘기로 한 것이다.

 

단양에서 풍기까지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죽령터널을 지나면 1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길을 에돌아 가느라 세 시간이나 더 걸렸다. 그래도 옛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길을 따라가 본다는 것이 무척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 되었다. 물론 걸어서 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영춘면 의풍리에 이르면 고치령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온다. 여기가 그 길목이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고치령이고, 다리를 건너 계속 직진하면 마구령이 나온다. 그러나 안내판이 없어 한참을 지나쳐 갔다가 동네 사람에게 물어서 입구를 찾았다. 고치령으로 들어가는 들머리는 영춘초등학교 의풍분교 맞은 편에 있다.

 

단양에서 의풍리로 들어오는 고개가 베틀재인데 작년에는 포장공사중이더니 이번에 보니 완전히 공사가 끝났고 길은 깔끔해졌다. 충북의 가장 오지인 이곳이 이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주민이나 관광객들은 반길 일이겠으나 그 반대급부로 청정지역이 오염되는 것은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동네를 지나면서 산속으로 길은 이어진다. 여기서 조금만 더 들어가면 길은 무척 험해진다. 기어는 1 단으로 놓아야 하고, 만약 승용차라면 바닥이 땅에 닿지 않도록 아주 조심해야 한다. 의풍리에서 고치령까지의 길은 대부분이 비포장이다.

 



산자락 아래에 폐가도 보인다. 여기는 인공의 소리는전혀 들리지 않는 산 속이다. 집 뒤 산은 이제 단풍이 들기 사작하고 있다. 집 앞에는 밭이 있고, 소백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옆으로 흐르고 있다. 문득 저 집을 보수해서그냥 눌러 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저기서 한 1 년 쯤 살다보면 다시 사람이 그리워질까?

 



조금 더 들어가면 영주시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나온다. 아직 산 아랫 부분인데 충북과 경북의 도 경계가 일찍 나타났다.소백산은 행정구역으로는 대부분이 경북에 속한다. 길이 갑자기 넓어지고 잘 닦여 있어 마치 고속도로에 들어선 것 같았다.

 

의풍리에서들어갈 때 가장 산 깊숙히 있는 마을이 마락리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영주시 단산면에 속한다. 마락리(馬落里)는 이름 그대로 말이 떨어진다는 뜻이니 예전에는 얼마나 길이 협소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차가 지날 정도로 길이 넓어졌다.

 



고치령으로 향하는 산길은 여기저기 공사중이었다. 얼마 뒤면 이곳도 아스팔트로 덮일 것이다. 그러면 차량 통행도 많아지고 산이 훼손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 길은옛 상태 그대로 유지하면서걷기 코스로 개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걸으면서 느껴야 더욱 아름다운 길인 것 같다.

 



드디어 고치령 고갯마루에 올랐다. 의풍리에서 느릿느릿 여기까지 오는데 40 분 정도가 걸렸다. 길에 직각 방향으로 한 쪽으로는 마구령까지 8 km, 다른 쪽으로는 국망봉까지 11 k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인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도 이곳을 통과할 것이다.

 

고치령은 소백과 태백을 나누는 경계 지점이라고 한다. 그리고 영주와 단양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행로였다. 이곳 사람들은 고칫재라고도 불렀다.

 





고갯마루에는 산령각(山靈閣)이 있다. 태백산 산신령과 소백산 산신령을 모시고 있다는데 산 아래 마락리 주민들이 일 년에 두 번씩 제를 지낸다. 그런데순흥과 가까운 이곳이단종복위운동과도 관련 있어, 태백산 산신령은 단종이고 소백산 산신령은 금성대군이라고 한다. 당시에 금성대군이 이곳 고치령을 통해서 영월에 있는 단종과 연락을 취했다고 한다.

 

이 고치령 산령각은 고개를 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무사와 안녕을 빌던 장소였을 것이다. 처마 밑으로는 새끼줄로 금줄이 쳐져 있다. 옛날에는 이런 서낭당이나 산신각이 마을이나 중요한 장소마다 있었을 것이다.

 



산령각 옆에 있는 장승들이다. 그중에서도 '恒樂'이라고 쓰인 장승이 인상적이었다.인생은 항락(恒樂)도 아니고, 그렇다고 항고(恒苦)도 아닐 것이다. 낙(樂)과 고(苦)의 파도를 어떻게 슬기롭게 탈 수 있느냐가 지혜가 아닐까?

 







고갯마루 부근은 빩갛게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여기서 영주 방향으로는 길이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다. 그래서 영주쪽에서는 길이 좋아 쉽게 고치령까지 올 수 있다.고갯마루에는 등산객들이 타고온 차들이 여러 대 주차되어 있었다.

 









내려가면서 만난 풍경이 아름다웠다. 여러 번 차를 세우고 가을이 주는 오감을 즐겼다.

 



마침내 산 아래 첫 마을에 이르렀다.영주시 단산면 좌석리다. 사과의 고장 답게 마을은빨갛게 익은 사과 과수원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리고 마을 가운데에 있는 느티나무도 석양을 받아 더욱 붉게 보였다.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에서 고치령을 넘어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까지 오는데 거리로는 10 km 정도 된다. 걷는다면 넉넉잡고 네 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이 길은 마구령과 연계하여 소백산의 트래킹 코스로 개발하면 아주 좋을 것 같다. 차량 통행은 가능하면 제한시켰으면 좋겠다. 여기는 차로 휭- 하니 지나갈 길이 아니다.

 

어느모임에서이곳 걷기를 한 것을 보니 마구령과 고치령을 함께 무박 3일로 걸었다는 기록이 있다. 청량리에서 열차를 타고 영주에서 내린 뒤 부석사를 답사하고 마구령을 넘어 의풍리로 간 뒤 다시 고치령을 넘어 풍기에서 열차를 타고 돌아온 코스였다. 이 코스는 총 걷는 거리가 35 km가 된다고 한다.

 

그 외에도 고치령으로 올라가 고갯마루에서 산 능선을 타고 마구령까지 가서 내려오는 방법도 있겠다. 고치령과 마구령 산길은 약 8 km라고 하니 두 고개를 반씩 오르내리면서 약 20 km를 걸을 수 있으니 하루 일정으로도 알맞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제주도에서 오름을 따라 걷는 길이라든가 지리산을 일주하며 걷는 길 등이 요사이 새롭게 개발되고 있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무척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걷고 싶어도 사실 마땅한 길이 없었다. 이번에 고치령을 넘어보니 이 길은어디에 내놔도 손색 없을 걷기에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도로를 확장하고 포장만 할 것이 아니라 옛 흙길로 복원하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찾도록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선인들의 삶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고 숙소나 쉼터가 정비된다면 자연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을까. 내 고향에 이렇게 아름다운 옛길이 남아있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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