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마니산에 오르다

샌. 2008. 10. 14. 15:43

하늘은 높고 푸르고, 산야의 색깔은 하루가 다르게 원색으로 물들어간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가을산 하나 찾지 않을 수 없다. 작은 베낭을 메고 마니산을 향해 길을 나섰다.

 

강화도에 있는 마니산(摩尼山)은 해발 500 m가 안 되는 작은 산이지만바다와 들판과 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조망이 뛰어난 산이다. 특히 능선길에 오르면 좌우로 한 쪽은 바다, 다른 쪽은 섬 안 지역으로 전망이 호쾌하게 트여있다. 전에는 이 산을 마리산이라고 불렀다 한다. '마리'는 '머리'에서 나왔다니까 이 산은 머리산, 즉 으뜸 되는 산이라는 뜻이다. 아마 참성단이 있는 곳이므로 그렇게 불린 듯 하다.

 

마니산은 그동안네 번 정도 올랐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함허동천에서 출발하여 오른쪽 능선길로 올랐다. 산길은 요사이 비가 오지 않아선지 먼지가 무척 많이 일었다. 특히 마음 아팠던 것은 등산로가 너무 많이 패여 있어 나무 뿌리나 산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었다. 내 발걸음이 산의 상채기를 후벼파는 것 같아 더욱 그랬다. 휴식년제를 하든지 아니면 빨리 보강 조치를 해서 더 이상 침식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산 중턱쯤에서 함허동천 입구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그 너머로는 간척지로 조성된 논에서 추수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먼 곳으로부터 서해 바다가 아련히 다가왔다.

 



능선에 올라서면 360도로 전망이 환해진다. 영화의 파노라마 화면과 같다. 왼쪽으로는 산 아래 마을과 들판, 그리고 점점이 섬들을 안고 있는 바다가 가을 햇살 아래 편안히 누워 있다. 지나가던 등산객이 섬 이름을 설명해 주었는데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넋이 빠지게 아름다운 경치였다.

 



마니산 정상을 지나 능선길은 참성단까지 이어진다. 길은 마치 거대한 공룡의 등을 타고 가는 기분이었다. 저 돌들 하나하나는 공룡의 비늘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바위를 타고내리는 재미가 아기자기했다.

 



참성단에 닿기직전에 참성단(塹星壇) 중수비(重修碑)를 만났다. 이 비른 숙종 43년(1717) 5 월에 만들어졌는데 따로 비를 세운 것이 아니라 암벽에 글자를 새겨넣은 것이다. 당시 강화유수였던 최석항(崔錫恒)이 순시를 하던 중 무너진 터를 보고 전등사의 승려였던 신묵(愼默)에게 명하여 보수토록 하고 그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국토 수천여리를 통틀어 강화는 나라의 방패가 되는 중요한 곳이며, 강화 수백리에서도 마니산은 나라에서 제사를 드리는 명산이다. 이 산 서쪽 제일 높은 곳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든 곳이 있으니 이곳이 참성단이다. 세상에 전하기를 단군이 돌을 쌓아 단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하던 곳이라 한다. 돌이켜 보건대 연대가 오래되어 비바람에 씻기고 깎여 서쪽과 북쪽 양면이 반쯤 무너졌으며, 동편 계단 또한 많이 기울어져 이 고을 여러 어른들이 서로 더불어 개탄한 지 오래되었다. 부족한 내가 이곳의 유수로 와 이 고을을 지키게 되어, 올 봄에 고을을 두루 살피면서 시험 삼아 한번 올라가 보았는데 분연히 이곳을 중수할 뜻이 생겨 선두포 별장 김덕하(金德夏), 전등사 총섭승 신묵(愼默)에게 그 일을 주관하게 하여 다시 쌓게 하니 열흘이 채 아니 되어 공역을 다 마쳤다. 아! 무너진 곳을 일으키고 고치어 옛 모습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은 고을을 지키는 자가 마땅히 힘써야 할 바이다. 하물며 단군은 요 임금과 같은 시대에 태어나시어, 실로 우리 동국 백성의 조상이 되시는데, 손수 단을 쌓아 하늘에 청결한 제사를 드리던 곳임이라! 수천 년이 지나도록 후손들이 우러러보며 공경할 곳이니 고쳐서 완전하게 하는 일을 어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신묵(愼默)이 일의 시말을 기록하여 후인들에게 이를 알리기를 청함으로 이를 써서 기록하는 바이다. 정유(1717, 숙종 43) 단양월(5월)에유수 최석항(崔錫恒)이 기록하다.'

 



참성단은 훼손을 막기 위해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단 안쪽에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가 인상적이었다. 단군 설화에 나오는 신단수(神檀樹)가 박달나무를 가리킨다니 혹시 그 나무가 아닐까?

 



누가 뒤에서 사진 한 장을 찍어 주었다. 저 멀리 보이는 봉우리가 마니산 정상이다. 다시 그곳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산은 위에서부터 발간 물이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빨간나무 열매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깨물어보면 약간 시큼한 맛이 났다.

 



내려가는 길은 정수사로 향했는데 바위 능선이 아슬아슬했다. 어떤 봉우리에서는 겨우 올라갔다가 무서워서 다시 내려가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무모하게 바위를 타다가 사고를 당할까봐 제일 겁이 났다. 산에서는 첫째도 조심, 둘째도 조심이다. 특히 나이가 드니까 더욱 그렇다.

 



정수사(淨水寺)에서 정수로 목을 축이고 대웅전의 꽃무늬창살을 구경했다. 꽃병에 담긴 꽃들이 마치 서양 정물화를 보는 것 같았다.

 

함허동천에서 출발한 시간이 12:30이었는데, 참성단까지 왕복하고 돌아오니 17:00가 되었다. 청명한 하늘 아래서 가을의 맛을 만끽한 즐거운 산행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은 단풍보다 더 진하게 저녁 노을이 붉었다. 서해의 황홀한 노을을 두고 길을 재촉해야 하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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