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강원도로 떠난 가을여행

샌. 2008. 10. 27. 16:38

가을이 곁에 온지도 잘 모르고 지냈다. 눈을 돌리니 이미 가을이 떠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느릿느릿 하던 시간이 이때만 되면 쏜살같이 지나간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선 아쉬움에 가을 분위기가 상승작용을 하는 것 같다. 10월의 마지막 주말에 동료들과 강원도로 1박2일의 가을여행을 다녀왔다.


아홉 명의 일행은 아침 9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속초로 향했다. 오전인데도 길은 군데군데 막혀서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진부의 부일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길이 조금만 막혀도 참지 못하고 국도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도리어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차 안에서는 서로 자기가 생각하는 길이 낫다는 주장으로 큰소리가 나기도 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준경묘였다. 여기는 묘보다도 소나무로 유명하다. 이곳의 소나무 중 일부가 남대문 중건을 위해 곧 벌채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황장목이 여기에 있는데 그동안 문중에서 반대하다가 이번에 허락이 된 모양이다. 준경묘는 지난 봄에 찾아온 적이 있었으므로 새로운 것은 없었다. 그러나 늘씬하게 뻗은 적송은 언제 봐도 시원한 느낌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곳은 조선왕조의 뿌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러나 무덤은 백여 년 전에야 발견되고 정비되었다. 여기에 묻힌 이양무(李陽武) 장군은 태조 이성계의 5대조 할아버지다. 전주에 살던 이양무 장군은 고려 고종 18년(1231)에 그의 아들 이안사가 지방 관리들과 불화를 일으키는 바람에 이곳 삼척 활기리에 피신 와서 살았다고 한다. 그는 이사 온지 1년 만에 죽고 여기에 묻혔다.






산길은 노란 솔잎이 떨어져서 더욱 운치가 있었다. 땔감으로 나무를 쓰지 않으니 이젠 아무도 마른 솔잎을 거둬가지 않는다. 왕복 4 km 정도 되는 산길을 다녀오니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일정대로라면 공양왕릉을 갈 예정이었으나 여기까지 오느라 도로에서 지체된 시간이 너무 길어서 포기해야 했다. 일행은 다시 삼척시내로 나갔다.





정라항 뒤편 언덕에 올라 동해의 야경을 구경했다. 오징어잡이의 휘황한 불빛을 예상했으나 바다는 어둡고 쓸쓸했다. 북쪽으로는 새천년해안도로가 바닷가를 따라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고 있었다. 삼각대 없이 손에 들고 찍어서 사진이흔들렸다. 정라항 뒤쪽 달동네 골목길을 따라 항구에 내려갔다.


정라항의 바다횟집에서 곰치국으로 저녁을 먹었다. 곰치국은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는데 의외로 맛이 담백하고 깔끔했다. 곰치라고 하면 그런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이 생각난다. 최근에 '빛'이라는 소설을 냈는데 나로서는 기대에 못미쳤다.




태백으로 들어가는 밤길에는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철암초등학교 앞의 단풍도 이미 한 물이 지난 뒤였다. 그래도 조명 덕분인지 빗속에서 밤에 보는 풍경이그럴 듯 했다. 늦은 시간에 함백산 아래 민박집에 도착했다. 새벽 1시가 넘도록 이어진 정치 토론을 감탄하며 지켜보다가 잠자리에 들었다.너무 피곤해서 좋아하는 소주를 한 잔도 하지 못했다.


밤새 비가 내리더니 다행히 아침에는 맑게 개었다. 모두들세수만 마치고 태백 시내의 자유시장 인근에 있는 본전식당에서 해장국으로 속을 달랬다. 이 집은 일행 중 한 사람이 20년째 단골로 들리는 집이였는데 담백한 해장국 맛이 좋았고 주인 아줌마의 소박한 친절도 인상적이었다. 다들 배불리 포식을 했다.




해장국을 기다리는 동안 홀로 태백시내를 산책 했다. 태백시는 탄광이 사라진 뒤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한때 20만이 넘었던 인구가 지금은 6만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 어제 밤 민박집 주인이 태백의 현실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며 한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아침 햇살을 받은 단풍은 고왔다.





식당 인근에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黃池)가 있었다. 강의 발원지라면 깊은 산속에 있는 것으로 연상이 되는데 시내 한복판에 있는 것이 신기했다. 여기서는 지하의 동굴샘에서 사시사철 물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물론 더 상류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있겠지만 이처럼 끊어지지 않는 수원이라야 발원지로 인정된다고 옆의 동료가 설명해 주었다.




작년에 이어 다시 동활계곡을 찾았다. 철이 지나선지단풍 색깔은 작년만 못했다.





다시 돌아나오며 도계읍 신리에 남아있는 너와집을 찾았다. 도로가에 여러 채의 너와집을 볼 수 있었지만 이 강봉문 씨의 너와집이 제일 아름다운 너와집이라고 한다. 나는 집 자체보다도 집이 자리 잡은 위치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런 집을 만나면 그냥 눌러앉아 살고 싶은 욕심이 생기니 큰일이다. 너와집은 소나무나 전나무를 쪼개어 기와처럼 지붕을 덮은 집을 말한다. 강원도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동료 덕분에 보통 사람들이 가보지 못하는 곳을 이번에 갈 수 있었다.




C가 공양왕의 유적지를 보여주겠다며 삼척의 마읍리로 안내했다. 이성계에게 쫓겨난 공양왕은 삼척으로 유배되었는데 이곳 마읍리에서 유숙했다고 한다. 그러나 안내판 하나 없고 C의 옛 기억마저 되살아나지 않아 산길을 방황하다가 되돌아와야 했다. 이성계는 구세력의 결집을 막고자 공양왕의 유배지를 계속 옮기다가 결국은 1394년에 아들과 함께 이곳 부근 어딘가에서 교살시켰다고 한다. 공양왕의 전설이 서린 마을의 감은 발갛게 익었다.





산골마을 늑구리로 올라가는 길은 승합차가 힘겨워 할 정도로 좁고 가팔랐다. 대부분이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이라 차 밑이 몇 번이나 바닥과 닿아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사람들은 산 높은 곳 경사면에 밭을 만들고 억척스레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저런 것이 우리 삶의 원형인 것 같이 느껴져 마음은 따스했다. 맞은편이 육백산이라는데 저 산 정상부에도 넓은 고랭지 채소밭이 있다고 한다.

늑구리에서 고사리역으로 내려가는 길에 큰 은행나무가 있었다. 보통 은행나무는 동네 가까이에 있는데 이 은행나무는 산 중턱에 있는 게 특이했다.

다시 차를 달려 정선군 남면 낙동리로 가서 지장천을 따라 동강으로 향했다. 나로서는 이번 여행 중 최고의 하이라이트 코스였다. 강과 가을산, 뼝대라 부르는 석회암 절벽이 만드는 풍경은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흔히 보기 힘든 수수밭도 자주 눈에 띄었다. C의 말로는 제 때를 맞추면 영화 '붉은 수수밭'이 연상되는 풍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냥 차를 버리고 걸어가고 싶은 길이었다.









 

포장이 안 된 길이 남아있어 반가웠다. 우리는 차에서 내려 1 시간 가까이 강길을 걸었다. 차는 우리 뒤를 천천히 따라왔다.


 

강을 두 번이나 건너야 했다. 우리는 강을 건널 때는 차에 타고, 건너서는 다시내려 흙길을 걸었다. 이 길은 비가 조금만 내려도 막혀 버린다. 비록 불편하긴 하지만 이런인공의 때가 묻지 않은 길에서는뭔가 원시적인생명력이 느껴진다. 전에는 낙동에서부터 대부분의 길이 이런 비포장이었다며 C는 사라진 정취에 대해 무척 아쉬워했다.




 

지장천과 동강이 만나는 가수리에서 우리의 짧은 트레킹은 끝났다. 산속에 묻혀 있는가수리는 꽤 큰 동네였다.

 

금대봉에서 발원하여 가수리까지 흘러온 지장천은 산골을 흐르는 강물답지 않게 탁했다. 강물에잠긴 돌에는 이끼가 많이 끼어 있었다. 폐탄광지대에서 스며나온 녹물과 생활하수들이 여기까지 오면서도 완전히 정화되지 못한 것이다. 지장천과 합쳐진 동강은 영월에서 서강과 만나 북한강이 되고, 다시 두물머리에서 남한강과 합쳐져 한강이 되어 서해로 흘러든다.


 

가수초등학교 운동장에 있는 멋진 느티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끌었다.

 

가수리에서 만난 동강과 뼝대. 동강을 따라난 저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며 동강의 가을 경치에 모두들 반했다. 동강은네 번째 왔지만 이번이 가장 길게 동강과 만났다.

 

해는 지는데 길을 바삐 재촉하며 청옥산 육백마지기로 향했다. 강원도는 어디나 터널을 뚫고 길을 확장하느라 멀쩡한 산이 훼손당하고 있어 안타까웠다. 그리고 스키장과 골프장 또한 그런 주범들 중 하나다. 태백에서도 함백산이 스키장 공사로 정상에서부터속살을 드러내 민망스러웠다.지방자치가 되면서 경쟁적으로개발광풍이불고 자연이 파괴되는 것은 통탄할 일이 아닐 수없다.





누군가가 '폭풍의 언덕'이라 했듯이 육백마지기에서는 바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바람이 거셌다. 여기는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장쾌한 전망이 일품이다. 멋진 노을을 기대하고 바삐 올라왔지만 구름에 가려 석양을 볼 수는 없었다. 1300 m 고도의 배추밭은 이미 수확이 다 끝나 있었다.잠시 머물다 수리재를 따라 내려왔다. 여기도 작년에 왔을 때와 달리 어느새 새 도로가 나 있었다.

 

귀경길은 차들이 막혀서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피곤했지만 오랜만에 바깥 바람을 쐬며 기분 전환을 한 좋은 여행이었다. 더구나 평범한 여행 코스가 아니어서 더욱 색다른 경험이었다. 다만 너무 많은 지역을 보려 한 탓에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었던 것이 흠이었다. 강원도의 구석구석을 손바닥처럼 알고 있으면서 우리를 안내해 준 C와 이틀 동안 힘든 운전을 도맡아 한 B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여행일 ; 2008. 10. 25 - 10. 26

* 여행경비 ; 11만 원

* 둘러본 곳 ; 준경묘 - 정라항 - 철암 단풍동산 - 태백 황지 - 동활계곡 - 신리 너와집 - 마읍리 - 늑구마을 - 지장천 트래킹 - 동강 - 청옥산 육백마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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