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조용한 일 / 김사인

샌. 2008. 8. 22. 12:07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조용한 일 / 김사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는 나뭇잎이 아닌가 싶다. 너무나 흔해서 별로 신경을 쓰지 않지만 색깔이나 모양이 나뭇잎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종류마다 잎의 모양이나 색깔이 다르고, 그 미묘한 차이가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잎의 부드러운 감촉도 좋고, 실핏줄 같은 잎맥도 예쁘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의 춤은 또 어떤가. 가을 단풍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깔과 풍경을 연출한다.

 

나뭇잎은 나무에서 돋아나 평생을 나무를 위해 일하고, 나무의 성장을 돕는다. 물과 공기와 햇빛 만으로영양분을 만들고 나무에 공급한다. 무기물에서 유기질을 생산해 내는 능력은 기적에 가깝다. 동물처럼 다른 생명을 죽여서 자신의 에너지로 취하지 않는다. 또한 나뭇잎은 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할 뿐이다. 그리고 생을 마치면 미련없이 땅으로 떨어져 자신을 소멸시키고 다른 생명의 거름이 된다. 가장 순수하고 완벽한 사랑의 모습을 나뭇잎에서 본다.

 

나뭇잎을 낳은 나무 역시 순수하고 아름다운 존재다. 아름다운 존재만이 아름다운 존재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와 잎은 한 몸이다. 그런 아름다운 존재들이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행복한 일이다. 진실로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파트인 / 신용목  (0) 2008.08.29
이불 한 채 / 유강희  (1) 2008.08.27
솔직히 말해서 나는 / 김남주  (0) 2008.08.18
하늘공장 / 임성용  (0) 2008.08.15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1) 2008.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