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솔직히 말해서 나는 / 김남주

샌. 2008. 8. 18. 13:31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지 몰라

단 한방에 떨어지고 마는

모기인지도 몰라 파리인지도 몰라

뱅글뱅글 돌다 스러지고 마는

그 목숨인지도 몰라

누군가 말하듯 나는

가련한 놈 그 신세인지도 몰라

아 그러나 그러나 나는

꽃잎인지도 몰라라 꽃잎인지도

피기가 무섭게 싹둑 잘리고

바람에 맞아 갈라지고 터지고

피투성이로 문드러진

꽃잎인지도 몰라라 기어코

기다려 봄을 기다려

피어나고야 말 꽃인지도 몰라라

 

그래 솔직히 말해서 나는

별 것이 아닌지 몰라

열 개나 되는 발가락으로

열 개나 되는 손가락으로

날뛰고 허우적거리다

허구헌 날 술병과 함께 쓰러지고 마는

그 주정인지도 몰라

누군가 말하듯

병신 같은 놈 그 투정인지도 몰라

아 그러나 그러나 나는

강물인지도 몰라라 강물인지도

눈물로 눈물로 눈물로 출렁이는

강물인지도 몰라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인지도 몰라라 기어코

어둠을 사르고야 말 불빛인지도

그 노래인지도 몰라라

 

- 솔직히 말해서 나는 / 김남주

 

비 그친 하늘은 구름으로 어둡게 덮여 있다. 다시 찾아온 무력감에 하루 종일 울적하다. 스스로를 괴로워하며 낭떠러지로 몰고가는 이 자괴감을 어찌할까? 감히 전사 김남주의 내적 갈등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시를 읽으며 잠시 위로를 받는다. 잘 보이지도 않는 길, 앞으로 한 걸음 떼어놓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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