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무것도 아닌지 몰라
단 한방에 떨어지고 마는
모기인지도 몰라 파리인지도 몰라
뱅글뱅글 돌다 스러지고 마는
그 목숨인지도 몰라
누군가 말하듯 나는
가련한 놈 그 신세인지도 몰라
아 그러나 그러나 나는
꽃잎인지도 몰라라 꽃잎인지도
피기가 무섭게 싹둑 잘리고
바람에 맞아 갈라지고 터지고
피투성이로 문드러진
꽃잎인지도 몰라라 기어코
기다려 봄을 기다려
피어나고야 말 꽃인지도 몰라라
그래 솔직히 말해서 나는
별 것이 아닌지 몰라
열 개나 되는 발가락으로
열 개나 되는 손가락으로
날뛰고 허우적거리다
허구헌 날 술병과 함께 쓰러지고 마는
그 주정인지도 몰라
누군가 말하듯
병신 같은 놈 그 투정인지도 몰라
아 그러나 그러나 나는
강물인지도 몰라라 강물인지도
눈물로 눈물로 눈물로 출렁이는
강물인지도 몰라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인지도 몰라라 기어코
어둠을 사르고야 말 불빛인지도
그 노래인지도 몰라라
- 솔직히 말해서 나는 / 김남주
비 그친 하늘은 구름으로 어둡게 덮여 있다. 다시 찾아온 무력감에 하루 종일 울적하다. 스스로를 괴로워하며 낭떠러지로 몰고가는 이 자괴감을 어찌할까? 감히 전사 김남주의 내적 갈등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시를 읽으며 잠시 위로를 받는다. 잘 보이지도 않는 길, 앞으로 한 걸음 떼어놓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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