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해를 따라 도는 꽃인 걸
마당에 노란 수선화 피어서 알았다
가녀린 꽃대에 크고 무거운 꽃을 달고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해를 따라 간다
달마는 마음 따라 동쪽에서 왔다지만
땅 속에 마음 묻은 수선화의 해바라기는
갈 수 없는 사랑의 지독한 형벌이다, 고
나는 오래전부터 수선화 꽃 뒤에 놓여있는
낡은 의자에 앉아 생각했다, 나도
그런 아픈 사랑한 적이 있었다, 고
해를 기다리는 말없는 꽃이나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같은 앉음새 같은 가부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란 수선화 지면서 알았다
꽃은 마르면서도 해를 따라 가고
말라 바스라지면서도 저 수선화
뜨거운 해바라기는 멈추지 않았다
수선화 꽃 뒤에 놓아둔 의자도, 사실
누군가를 기다리겠다고 놓아두었지만
의자에 앉아 사람을 기다렸던 시간보다
비어두었던 시간 더 많았으니
나는 꽃처럼 사랑하지 못했다
나는 꽃처럼 사랑에 답하지 못했다
- 사랑에 답하여 / 정일근
옆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수선화였다. 낡은 의자에 앉아 내가 기다린 것이 무엇인 줄은 몰랐다.
어느 날, 수선화의 해바라기가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 향기가 코 끝까지 밀려온 날, 나는 알았다. 내가 기다린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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