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여서(女書)를 받고 / 조운

샌. 2007. 12. 26. 12:09

너도 밤마다

꿈에

나를 본다 하니

 

오고

가는 길에

만날 법도 하건마는

 

둘이 다 바쁜 마음에

서로 몰라보는가

 

바람아 부지 마라

눈보라치지 마라

 

어여쁜 우리 딸의

어리고 고운 꿈이

날 찾아

이 밤을 타고 이백 리를

온단다

 

- 조운 / 여서(女書)를 받고

 

어느 날 멀리 떨어져 있는 딸로부터 아버지는 편지를 받는다. 아마 그 편지에는 밤마다 아버지의 꿈만 꾼다는 딸의 애절한 사연이 젹혀 있었을 것이다. 자식의 편지를 받고 그리움과 안타까움에서러운 부정(父情)이 이 시에 잘 묘사되어 있다. 오죽했으면 딸이 찾아오는 꿈자리를 방해하지 말라고 '바람아 부지 마라'고 하며 애원을 할까.

 

부모와 자식 사이를 천륜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고금에 차이가 없을 것이다. 특히 부모가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야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그러나 이런 시를 읽으면 나는 뜨끔해진다. 부모에 대한 사랑도, 자식에 대한 사랑도 함량 미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부모에게, 자식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부족한 사랑에 표현까지도 서투니 늘 서걱거리기만 한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그렇지 않음을 이심전심으로 알아 주기를, 사람의 진정은 어떻게든 서로 통한다는 사실이 한 가닥 위로가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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