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로써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고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 설일(雪日) / 김남조
2008년 새해 첫날, 이 시를 읽는다.
사실 이젠 해가 바뀌는 것도 무덤덤해지는 나이가 되었다. 이만큼 살다보니그날이 다 그날로 보인다. 인생에 특별한 날이 무에 있으랴. 치열한 삶의 격랑 한가운데서 한 발 비켜난 듯한 이 기분, 담담하지만 그러나 왠지 서운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 시인의 말처럼, 이젠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어떤 형편에서든지 삶을 황송한 축연이라고 여기고 한 세상을 누리자. 자갈밭에 서러워 할 것이 아니라 그 길에 숨어있는 은총과 섭리를 읽을 줄 알자.
나에게 새해는 더욱 사랑하고, 더욱 성숙해지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특히 내 가족과 더욱 따스하게 이어지기를... 그리고 모든 생명들에게 사랑과 평화가 샘솟아 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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