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설일 / 김남조

샌. 2008. 1. 1. 09:08

겨울 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로써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고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 설일(雪日) / 김남조

 

2008년 새해 첫날, 이 시를 읽는다.

사실 이젠 해가 바뀌는 것도 무덤덤해지는 나이가 되었다. 이만큼 살다보니그날이 다 그날로 보인다. 인생에 특별한 날이 무에 있으랴. 치열한 삶의 격랑 한가운데서 한 발 비켜난 듯한 이 기분, 담담하지만 그러나 왠지 서운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 시인의 말처럼, 이젠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어떤 형편에서든지 삶을 황송한 축연이라고 여기고 한 세상을 누리자. 자갈밭에 서러워 할 것이 아니라 그 길에 숨어있는 은총과 섭리를 읽을 줄 알자.

 

나에게 새해는 더욱 사랑하고, 더욱 성숙해지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특히 내 가족과 더욱 따스하게 이어지기를... 그리고 모든 생명들에게 사랑과 평화가 샘솟아 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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