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순흥 청다리

샌. 2007. 8. 18. 12:42



옛날 어른들은 아이들을 달래거나 놀릴 때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나의 경우도 주로 큰어머님으로부터 '순흥 청다리에서 주워왔다'라는 놀림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 말을 하면서 주위에 있던 어른들은 하나같이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다리[橋]와 다리[脚]의 같은 발음을 이용한 재미있는 성적 유머임을 어렸을 때는 알 수 없었다.

 

주위에 다리가 많았음에도 왜 하필'순흥 청다리'였는지는 그곳에 얽힌 역사적 사연 때문이다. 1457년에 금성대군이 순흥부사 이보흠과 함께 모의했던 단종 복위운동이 발각나면서 이 지역에 있던 주로 순흥 안씨 선비들과 가족들이 청다리에서 참수되었다. 이때의 희생자가 수백명이라고도 하고, 수천에 이른다고도 한다. 그리고 몇 달간 죽계천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고 한다. 그때 다행히 죽음을 면하고 살아남은 어린 아이들을 데려와 키웠는데 이때부터 '청다리 밑에서 데려왔다'는 말이 생겼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해석은 소수서원에서 수학하던 유생들이 마을 처녀나 기생들과 정을 통하고 생긴 사생아를 청다리 밑에 버렸는데,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청다리 밑에서 아이를 데려가 기른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어느 쪽이 맞는 설명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 이야기의 원류는 바로 이곳 순흥 청다리인 것만은 분명하다.

 

순흥 청다리는 내 고향에서 가까운 소수서원 옆에 있다. 서원을 휘돌아가는 죽계천에 놓인 작은 다리인데새로 만든 듯한시멘트 다리에서 옛 정취를 느끼기는 힘들다.청다리는 한자로 무우 청자[菁]를 쓴다고 한다.이 말 역시 여성의 다리를 연상시키는 것이 재미있다.

 

어릴 적 순흥 청다리에 관한 놀림을 받으며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이 다리를 보면서 새삼 떠오른다. 그때는 그래도 혹시나 내가 버려진 아이가 아니었던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다리(?) 밑에서 주워온 자식들이 아니던가. 옛 어른들의 재미난 해학이 오늘따라 더욱 즐겁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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