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묵가 공동체

샌. 2007. 5. 11. 09:05

춘추전국시대에 유가(儒家)와 함께 쌍벽을 이룬 것이 묵가(墨家)였다. 그러나 묵자(墨子)의 사상은 평민 중심의 사상이었으므로 지배층에 의해 배척되고 결국 역사에서 사라졌다. 근래에 와서 다시 새롭게 조명되고 있지만 역시 주류사상으로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묵자가 선택한 길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만들어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공동체의 기본 이념은 겸애(兼愛)와 교리(交利)라고 할 수 있다. 겸애(兼愛)는 말 그대로 무차별적인 사랑을 뜻한다. 부모나 자식이라고 하여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하지 않고, 친척 사이가 아니라고 하여 다른 이를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공자도 인(仁)을 강조했지만 묵자의 겸애와는 차이가 있다. 묵자의 겸애는 문외한인 내가 볼 때는 예수의 사랑과 닮은 데가 많은 것 같다.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 같이 하라는 말씀은 예수나 묵자에게 공통된다.


교리(交利)는 서로 이로움을 주고받는다는 뜻이다. 나만의 이익을 챙기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의 이윤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자기가 번 것이라도 스스로를 위해 사치스럽게 쓰는 것은 금지했다. 생산된 물품은 공동으로 관리하고 나눠썼으며, 이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묵가 공동체는 사랑과 평등이 실현된 이상적인 집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상이 국가 권력층의 비위에 맞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중앙집권체제의 전제국가가 등장하자마자 묵가 공동체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현대사회의 문제점은 대부분이 개인이나 집단의 지나친 이기성(利己性)에 그 원인이 있다. 이기성이 인간의 타고난 유전적 성질의 발현이지만 이것이 통제받지 않고 도리어 나의 이윤 추구를 위해서는 다른 생명이 희생되어도 상관없다는 사회 원리가 지배하는 한 환경이나 인간성 파괴 같은 부작용들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이기성의 극복을 위한 종교적, 제도적 장치가 여러 가지로 고안되었지만 지금껏 성공을 거둔 것은 없었다. 자본주의가 세상을 휩쓸고 있는 이 시대에 다시 이런 원론적인 탐색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본다.


자본주의의 병폐를 고치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드는데 묵자의 사상이, 그리고 묵자 사상의 실현의 장인 묵가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본다. 묵자 사상은 이상적이지만 동시에 실용적인 면도 많이 갖추고 있다. 현실적으로 아미쉬 공동체가 묵가 공동체에 가장 닮아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니까 묵가 공동체는 충분히 가능한 모델이다. 나 자신 아직 ‘묵자’를 자세히 읽어보지 못해서 일반적 상식 수준에서 갖는 관심이지만, 묵자가 현대적 의미에 맞게 재해석되고 우리의 실생활에서 실천될 수 있는 이념으로 발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겸애(兼愛)와 교리(交利)야말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중심가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차가운 현실을 넘어서려는 마음들이 모여지면 따뜻한 새 세상도 그만큼 가까워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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