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제 2의 인생

샌. 2007. 5. 6. 14:32

아이들이 나에게 붙여준 별명이 KFC다. KFC 치킨 가게 앞에 서있는 할아버지와 내가 비슷하다고 이놈들이 생각한 모양인데 한 아이에게 물어보니 인자하게 웃는 모습이 닮아서 그렇다고 한다.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은 유감이지만 기분 나쁜 별명은 아니다. 아이들의 보는 눈은 정확하다고 믿는 편이고, 다른 사람이 보는 내 이미지가 긍정적인 데 일단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근래 사람들이 내 인상에 대해 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대체로 부드럽다거나 여유가 있어 보인다, 또는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는 말을 듣는 편이다. 물론 거기에는 외교적 언사도 있겠지만 그렇게 비호감인 사람은 아니다라는 정도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얼마 전에는 동료들로부터 피부 얼짱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리고 흰머리만 아니면 훨씬 젊어 보일 것이라는 말도 자주 듣는다. 미남 소리는 들어보지 못하지만 내 외모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에 대해서는 이젠 좀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10년 전만 해도 내 이미지는 지금과 반대였다. 내적 번민과 갈등으로 엄청 힘들었던 당시에 내 말은 날카로웠고,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고 늘 굳어 있었다. 자주 신경질을 부리고 하니 '저 사람은 왜 인상만 쓰고 다니느냐'는 말을 전해 듣기도 했다. 세상에 대해서는 적대적이고비관적이어서 하루라도 빨리 거기서 벗어나야 했다. 그래서 늘 탈출을 꿈꾸며 나만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그런 나 때문에 가장 피해를 많이 본 것은 가족들이었다. 아이들의 행동이나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으니 사춘기 때의 아이들과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고 그 결과로 대화가 끊어졌다. 그 여파는 지금까지도 우리 집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이후로 나에게는 내면에서 또 외적 생활에서많은 변화가 생겼다. 50대를 전후해서 나에게 닥친 사건들은나머지 인생들을 합해 놓은 것보다 훨씬 더 강도가 높았다. 아직도 그 과정 중에 있지만 되돌아보면 나를 찾아온 시련들이 결국은 나를 단련시키고 모난 성격과 좁은 세계관을 깨뜨리는 과정이었다.10년의 시간차를 두고 비교할 때 내가 변했다는 것만은 확실히 단언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이 나이가 듦에 따라 수반되는 자연스런 과정일 수도 있겠으나 내 의지와 외부의 타력이 작용했다는 것에 대해 나는 지금 추호의 의심도 없다.

그런 변화에 대해 나는 지금 무척 감사하고 있다. 참 좋은 인연들도 만났고, 인생의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분들도 만나서 많은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모두 그분들 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면 지금의 내가 뭔가를 이룬 완성품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결코 그렇지는 않다. 과거의 못난 내 모습에서 이제 평균적인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내가 나 자신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고마운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욕망에 부대끼고 갈등을 겪으며 마음은 분주하다. 허나 욕망과 갈등과 분주한 마음을 대하는 또 다른 마음의 틀은 전과는 달라졌다.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매듭이 있고 고비가 있다. 어떤 불연속적인 경계점을 경험하는 것이다.나로서는 쉰 살 부근에 그런 경험을 했고 어떤 점에서 내 인생은 쉰 살에 새로이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내 정신적 연령은 이제 유치원생이다. 앞으로 새롭게 만나게 될 것들, 배우게 될 것들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으로 내 마음은 부풀어 오른다.이 마음만 간직할 수 있다면 인생은 전과는 다른 또 다른 의미와 가치로 나에게 다가오리라 믿는다.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밤골의 추억(2002)  (0) 2007.05.19
묵가 공동체  (0) 2007.05.11
귀연(歸然)  (0) 2007.05.04
이 시대에서 가난의 가치  (0) 2007.04.27
[펌] 내 하느님이 계시는 곳  (0) 2007.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