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영화다. 그래도 영화가 얘기하려는 것이 뭔지 뚜렷이 잡히지 않는다. 가족 간의 갈등과 치유를 다루는 것 같은데 우주적 차원으로 의미가 확대되어 난해해져 버렸다. 영화에 너무 많은 것을 담고 해석하려는 테렌스 맬릭 감독의 욕심이 지나친 것 같다. 단순한 걸 어렵게 그려내는 재주가 감독에게 있음이 틀림없다. 그래도 이런 영화가 좋다. 머리는 복잡하지만 긴 여운이 남는다. 오감으로 느껴지는 현실 너머의 깊은 신비의 세상이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특히 아름다운 영상 표현이 압권이다. 영화의 포스터는 영화에 나온 장면 70개가 모자이크 되어 있다.
영화는 초반부에 우주와 지구가 탄생하는 과정이 길게 나온다. 이 장면은 마치 장대한 과학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감독은 우주의 탄생과 가족의 탄생을 연관 지어 해석하려고 한다. 우주와 가족의 탄생과 성장에 사랑이 없다면 이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은 혼돈을 질서와 평화로 변화시킨다.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는 갈등을 유발하고 상처를 남기지만 결국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사랑이다. 영화에서는 기독교의 신과 부드럽고 헌신적인 어머니의 이미지가 끊임없이 등장한다. 심지어 공룡이 나오는 장면에서도 감독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병들어 쓰러져 있는 공룡에게 포악한 다른 공룡이 다가온다. 물어뜯어 죽일 것이라고 누구나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머리를 밟으려는 순간 육식공룡은 발을 멈추고 연민의 눈동자를 보인다. 그리고 되돌아간다. 이런 장면으로 감독은 모든 사물이나 생명체에 내재한 사랑을 드러내 보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 삼 형제 중 장남인 잭은 엄격한 아버지와 갈등을 겪으며 방황한다. 세상에 눈을 떠가는 소년과 남자아이들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 영화에서 깊은 의미를 찾지 말고 한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도 흥미롭다. 자식을 둔 부모라면 아이의 입장을 헤아리고 하나의 인격체로 대할 줄 아는 지혜를 배울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쉽게 관객을 놓아두지 않는다. 끊임없이 의미에 대한 압박을 가해 온다. 그게 부담이 되면 영화는 지루하고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다. 유감인 건 기독교적 세계관이 너무 짙게 드러나는 점이다. 처음 욥기에 나오는 성경 구절로 시작하더니 끝날 때까지 헤어나지 못한다.
'트리 오브 라이프'(The Tree of Life)는 에덴동산에 있었던 '생명의 나무'를 뜻한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하느님을 거역했다. 이때 하느님은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될까봐 에덴동산에서 둘을 내치고 번쩍이는 불 칼을 세워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을 막았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인간이 영원히 접근할 수 없는 나무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 상황과 영원에 대한 갈망을 함께 나타내는 의미가 있다. 감독이 이 영화에서 말하려는 주제가 영화 제목 속에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트리 오브 라이프>는 꽤 어렵지만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아름다운 영화다. 한 편의 영상시라고 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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