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녹색세계사

샌. 2011. 11. 8. 21:23

클라이브 폰팅(Clive Ponting)이 지은 <녹색세계사>(A New Green History)는 인간 중심이 아니라 지구 환경을 중심으로 한 세계사 책이다. 부제가 'The Environment and the Collapse of Great Civilisations'이듯이 인간이 만든 문명이 어떻게 지구를 파괴하고 약탈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역사는 진보하고 발전한다고 믿을지 모르지만, 관점을 지구로 돌리면 심각한 생태적 위기와 만난다. 인류 역사는 인간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점점 더 복잡하고 환경에 타격을 주는 방법을 써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은 과학 보고서라 할 정도로 정량적인 통계 자료를 제시하며 인간이 자연에 미친 영향을 꼼꼼하게 짚어간다. 약 1만 년 전 농경정착사회가 되면서 인류는 자연과의 관계에서 전환기를 맞았지만, 그때는 자연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200년 전 산업혁명을 겪으며 인간은 전 지구적인 재앙의 주인공이 된다. 풍요로운 사회를 창조한다는 것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환경을 파괴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지금은 워낙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문제를 해결하기도 난망한 상태다.

저자는 문명이 생기고부터 나타난 불평등의 문제를 상당히 비중 있게 다룬다. 잘못된 서구의 가치관이 인간과 자연의 불평등한 관계를 만들었지만, 인간 사회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의 착취와 수탈을 볼 수 있다. 기아나 식량을 비롯해 환경 문제 대부분이 이 불평등과 연관되어 있다. 환경 문제는 곧 정치적 문제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저자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도 비관도 아닌 중립적 입장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성장과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 소비를 지속한다면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책머리에는 그 예로 이스터 섬을 들고 있다. 이스터 섬에는 5세기경 최초의 정착민이 들어왔는데 전성기에는 7천 명이나 될 정도로 번성했다. 그러나 무분별한 목재 채취로 산에 나무가 사라지면서 그들의 삶도 끝장이 났다. 부족한 자원을 둘러싼 갈등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 살아남은 소수는 다시 원시생활로 돌아간 것이다. 환경이 더는 압박을 이겨낼 수 없게 되자, 천 년 이상 땀 흘려 건설한 그 사회는 환경 파괴와 더불어 몰락했다. 지구도 폐쇄적 생태계라는 점에서 이스터 섬과 다르지 않다.

병을 치료하자면 병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 중병에 걸린 지구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지구와 지구 생태계가 인간에 의해 어떻게 파괴되었고 약탈당하는지를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생생히 그려주고 있다. 어느 날 도서관 서가를 돌아다니다가 제목에 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인간의 행위가 얼마나 지구 생태계를 변화시켰는지를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구에 대해서, 다른 생물 종에 대해서 인간은 몹쓸 짓을 많이 저질렀다. 경제 성장과 대량 소비, 안락과 부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하나뿐인 지구가 더는 견딜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지구 환경과 공존하는 기품 있고 정의로우며 검소한 생활양식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장래는 암담하다. 탐욕에 기반을 둔 성장제일주의냐, 아니면 대안적 삶이냐, 선택은 우리의 몫이지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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