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서 살아가고
죽어서 떠나갑니다.
30살까지는
젊고 건강해서
삶과 친구가 되고
60살 넘어 30년 동안은
늙고 병들어
죽음과 친구가 되어 간답니다.
그 둘 사이,
30살부터 60살까지는
삶과 친구가 되었다, 죽음과 친구가 되었다
왔다 갔다 갈팡질팡한답니다.
왜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죽음과 친구가 되어 갈까요?
지나치게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삶과 죽음이
같은 길에 있음을 알아
삶과 죽음,
모두에게 너그러운 사람은
여행을 가도
결코 맹수가 날뛰는 곳은 가지 않는다지요.
군대에 가도
결코 무기를 들어야 하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지요.
그러니
그 사람의 인생은
호랑이의 발톱과 마주치지 않으며
서슬 퍼런 칼날과 마주치지도 않는답니다.
그건 다 삶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한
죽음을 발붙일 틈조차 찾을 수 없을 거예요.
出生入死. 生之徒十有三, 死之徒十有三. 人之生, 動之死地, 亦十有三.
夫何故, 以其生生之厚. 蓋聞善攝生者, 陸行不遇시虎, 入軍不被甲兵,
시無所投其角, 虎無所措其爪, 兵無所用其刃. 夫何故, 以其無死地.
여기서는 '十有三'의 해석을 어떻게 할지가 애매하다. 어떻게 해석하든 마뜩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냥 대부분의 견해대로, 삶의 길로 들어선 사람이 삼분의 일, 죽음의 길로 가는 사람이 삼분의 일, 열심히 사는 것 같지만 실은 죽어가는 사람이 삼분의 일이라고 해두자. 확실한 것은 삶의 길로 든 사람보다는 죽음의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삶에 집착하는 태도다. 죽음을 부정하고 삶만을 지나치게 좋게하려는 마음가짐이다. 그런 인간의 욕망이 우리를 도리어 죽음의 길로 이끈다고 노자는 경고한다.
행복을 쫓는다고 행복이 주어지지 않는다. 삶에 집착하는 것이 참삶의 길은 아니다. 차라리 그 모든 것을 놓아버릴 때 진정한 삶의 행복은 미소 짓는다. 그것이 영원히 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