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의 길은
온 세상으로 뻗어 있지요.
하지만
온 세상 돌아다니며
일일이 찾아 헤매지 않네요.
인터넷 창문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많지요.
물어물어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멀어지고
정보를 모으면 모을수록
점점 더 멍청해지지요.
하지만
타오와 함께 하는 사람은
문 밖에 나가지 않아도
온 세상과 만날 수 있지요.
여기저기 기웃기웃하지 않아도
훤히 꿰뚫고 있지요.
두리번두리번 돌아다니지 않아도
온 세상을 훤히 보고 있지요.
그러니
억지로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이루어 가네요 - 당신의 마음 속에서
不出戶, 知天下, 不窺유, 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是以聖人, 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爲而成.
여행을다녀온 사람들로부터어디를 가든 사람 사는 모습은 똑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멀리 낯 선 풍경을 찾아 떠나지만 결국은 단순하고 보편적인 원리를 깨닫게 된다. 여행을 통해 우리가 배우는 것 중 하나는 내가 사는 이 자리가 소중하다는 깨달음일 것이다.
'不窺유 見天道' - 창문을 통하지 않고도 천도를 본다. 보통 이렇게 해석하는데 나는 이것을 창문을 통하지 않아야 천도를 본다로 바꿔보고 싶다. 창이란 세상을볼 수 있는 열린 틈이지만, 창으로 보는 세계는 제한적이고, 어떤 경우에는 실제의 모습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창을 인위적 가치 체계에 대한 비유로 보는 것이다.
이 내용과는 관계 없지만 공지영 씨의 소설에 나오는 한 구절이 생각난다.
'인간들은 대개 집에다 창문을 만들지요. 너무 작아서 사람이 드나들 수 없는 창문 말입니다. 심지어 이 공기 탁한 서울에서 나무 한 그루 없는 삭막한 길로라도 사람들은 창을 내지요. 왜 그런지 아세요? 인간들은 말이지요. 모두가 그리워서 그래요. 그리워서 창문을 만드는 거예요. 대문처럼 크게 만들면 누가 들어오니까 작게, 또 대문처럼 크게 만들면 자신이 못 견디고 아무나 만나러 나갈까 봐 작게, 그렇게 창문을 만드는 거예요. 몸으로는 만나지 말고 그저 눈으로 저기 사람이 사는구나, 그림자라도 서로 만나려고 아니 그림자만 얽히려고 그래야 아프지 않으니까, 그림자는 상처받지 않으니까...'
지은이는 무척 아프고 외로웠나 보다. 그리고 이 글에 공감하는 사람들 또한 그러할 것이다. 나만이 아프고 외로운게 아니야, 모든 사람들이 그래, 그러니까 모두들 작은 창문을 만들었잖아. 집에 난창문을 볼 때마다 인간에 대한 따스한 연민이 배어든다. 그리고 골목길을 지나갈 때 창을 예쁘게 꾸민 집을 볼 때면 '나는 이렇게 아프고 외롭고 그립답니다'하는 주인의 말이 들리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