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우리를 낳아 기르시고,
타오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낳아 기르니,
타오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어머니.
그러니
타오는
우리의 어머니랍니다.
우리는 모두 타오라는 어머니의 자식들이지요.
우리가 타오의 자식임을 알아야
비로소
타오의 높고 큰 사랑을 알 수 있답니다.
마치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듯이.
그리고 그런 참사랑을 느낀다면
우리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에 안길 수 있답니다.
우리는 자라면서
눈과 코와 귀와 입을 빌려
세상을 배웁니다.
그러면서
몸도 마음도 점점 지쳐 가지요.
그럴 때 문득 생각나는 사람, 어머니.
어머니의 품속으로 돌아가세요.
그러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답니다.
사노라면
눈과 코와 귀와 입을 빌려
지식의 조각들을 주워 담는 시간도 필요하겠지요.
그 의식의 조각
그 조각들로
하루를 살았다면,
조각을 온전히 끼워 맞춘 전체, oneness,
그 무의식의 어머니 품속으로 돌아가세요.
그 부드러운 어머니 품속은
당신에게
참된 만족과 평온한 안식을 안겨 주며,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영원히 당신을 지켜 줄 테니까요.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旣得其母, 復知其子, 復守其母, 沒身不殆.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濟其事, 終身不救.
見小曰明, 守柔曰强,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 是爲習常.
타오, 로고스, 이(理), 법, 브라만, 우주원리등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가르키는 것은 다 같은 것이 아닐까? 그것은 현상계 너머에 있는 인간의 언어로는 나타내지 못하는 그 무엇이라고 할 수 있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우리는 그 속성의 한 부분만 묘사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때와 장소에 따라 부성(父性)이 강조되기도 하고, 모성(母性)이 강조되기도 한다. 그것을 어느 하나에 국한시킬 수 없음은 물론이지만 지금 이 시대에 요구되는 것은 생명을 키우는 모성으로서의 모습이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우리는 그것과 하나됨으로써 최고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품속에 안김으로써 어머니의 품속에 안긴 아기처럼 참 행복과 평화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