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전시작전권 환수를 반대하는 사람들

샌. 2006. 9. 7. 12:00

지난달부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가 이슈가 되어 있다. 정부 측에서는 조기에 환수 받으려고 하고 한나라당이나 보수단체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개인적 입장으로는 환수를 빨리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고, 그래서 퇴역장군들이나 전임 국방장관들이 안보 공백을 이유로 반대 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저께는 인문계 대학교수를 중심으로 환수에 반대하는 700여명이 서명을 하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 명단에 내가 평소에 존경하는 박 모 철학교수가 들어있어 무척 놀랐고 동시에 실망을 했다. 정말 전시작전통제권을 지금 환수 받으면 큰일 나는 것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물론 모든 사안에 대해서 같은 의견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나 이번과 같이 시류의 기본 줄기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보인다는 것은 그분에 대한 신뢰에 흠집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독재 시대에는 존경을 받던 여러 사람들이 지금 나라의 원로가 되어서는 언행에 실망을 주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환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미 국방장관은 한국의 대북 방어력이 충분하고 그래서 2009년 쯤 환수해 가는 것이 적당하다고 말했다. 반대자들의 말에 의하면 작전권을 환수 받으면 곧 전쟁이 나고 북한에 의해 금방이라도 점령당할 것 같은 형세다. 한국은 이미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어 있다. 북한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정확한 정보는 모르지만 국방력도 차이가 있을 것은 불문가지다. 전부터 북한의 능력을 과대평가해서 위기의식을 심어놓고 자기들 뜻대로 나라를 이끌어간 것이 이제까지의 집권층 행태였다. 수십 년 동안 자주국방의 기치를 내걸고 군현대화를 최우선으로 했지만 아직도 아니라면 하면 도대체 언제가 되어야 만족한다는 말인가. 전임 국방장관들은 큰소리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책임의식을 느끼고 겸손해야 할 것이다. 전쟁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이 계속 외세에 의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국민 세금이 늘어날 것이라고도 하는데 스스로 나라를 지키는데 도리어 지도층이 앞장서서 경제적 부담을 질 수 있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런 일로 나라 경제가 휘청댈 정도로 우리나라가 그렇게 허약한 나라는 아니다.


평화는 이웃 나라와 군사력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상호 견제를 통해 유지된다. 일방적인 힘의 우위로 평화가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상대방의 군사력에 대해 일방적인 우위에 설려고 하는 것이 불안의 원인일 수도 있다. 한없는 군비 경쟁의 악순환에 빠져들게도 한다. 북한의 핵위협과 미사일위협을 강조하는 미국과 일본은 그로 인해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얻고자 하는 바가 분명 있을 것이다. 안보불감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우리가 그들의 장단에 같이 놀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 무엇보다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나라의 주권과 자존심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지휘권을 외국이 갖고 있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다. 제 나라를 자신의 손으로 지키지 못하는 주제에 다른 명분을 댄들 누구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 자칭 지식인으로 자처하는 기득권층 사람들은 자녀를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군대를 면제 받고, 전쟁이 나면 자기 것 챙길 궁리부터 하기 전에 애국심을 회복하고 먼저 솔선수범 해 주기를 바란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외세나 대포의 힘이 아니라 국민의 정신력이라는 것을 자신들이 먼저 알 것이다. 그래서 작전권 환수 반대에 핏대를 올릴 것이 아니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자고 호소해야 옳다고 본다. 그리고 눈앞의 이익보다는 사물의 본질과 의미, 명분에 가치를 두시던 교수님의 평소 가르침과 이번의 작전권 환수 반대는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지를 묻고 싶다.


만약 노무현 정부가 정략적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가 환수 받을 때가 아니라는 주장에는 공감할 수 없다. 더구나 당사자인 미국조차 2009년까지는 돌려주길 희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환수 받지를 않겠다는 것은 아무리 실리가 중요하다지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군대의 작전권도 갖지 못한 나라라고 그동안 이웃으로부터 받은 모멸만으로도 충분하다. 얼마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나라의 주권과 자존심이 걸린 이것은 더 이상 늦추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안보 위협은 대화와 평화 체제 구축, 나아가서는 군축으로 해결해야지 언제까지나 냉전 논리에 의한 외세의 무력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혹시나 내가 간과한 작전권 환수에 관계된 심각한 문제가 실재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내 주장이 백 퍼센트 옳다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내 생각이 아둔하고 세상의 흐름을 읽지 못한 잘못된 견해로 판명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지식인들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 우리의 미래는 암담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반대를 보면서 나라를 이끄는 대표적 지성들의 생각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하는 실망이 떠나지 않는다. 그러나 훗날의 역사는 이번 지식인 선언을 한 편의 코미디로 기록할지도 모른다. 코미디를 하는 사람은 절대 자신은 웃지 않는다. 가장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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