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C가 집으로 찾아왔다. 집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씬하고 예뻐져서 예전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C임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무척 반가웠다. 집안 탁자에 마주앉았다. 아내는 자리를 피했다. 그동안 많이 아팠다고 했다. 나에게 연락하기 위해 편지를 보냈는데 나는 편지를 받지 못했다. 옆에는 다른 사람이 개봉해서 열어본 그 편지가 있었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났고, C는 그때와 다르게 연약하고 가냘팠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만든 장갑을 선물했다. 털장갑인데 색실의 예쁜 무늬가 놓여 있었다. 옛 얘기도 하고 당시 사람들의 안부를 물어보려는데 잠이 깨었다. 오늘 새벽에 꾼 아주 선명한 꿈이었다.
C는 20대일 때 교회에서 만났다. 잠시 청년회 활동을 같이 했는데 같은 대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비해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녀에게 호감이 있는 정도였고,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 별 관심이 없었다. 교회 활동 외에 개인적인 만남은 거의 없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교회에 나가지 않으면서 그냥 연락이 끊어졌다. 그런 C가 갑자기 꿈에 나타난 것이다. C가 다정하게 꿈으로 찾아올 이유는 하나도 없다. 평상시에 내가 C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꿈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C와는 약 2년간 알고 지냈지만 지금 기억에 남는 추억은 별로 없다. 그녀는 피아노도 잘 치고 노래도 잘 했는데 꾀꼬리 같은 목소리는 늘 앙코르를 받았다. C의 어머니가 교회 전도사일 정도로 독실한 신앙의 집안이었다. 그래서 C도 나중에 전도사와 결혼하고 시골 개척교회에서 일한다는 풍문을 들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불현듯 꿈에 나타난 모습 때문에 궁금해진다.
요사이 꿈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꿈이 영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꿈 작업이라고 부르는, 꿈에 대한 기록과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공감이 되는 말이다. 그래선지 오늘 꿈이 다른 때와 달리 색다르게 대해진다.
나를 찾아온 사람은 C가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꼭 사람일 필요도 없다. 그는 어떤 메시지를 전해주려고 애썼는데 잘 되지 않으니까 직접 찾아왔다. 그리고 이 꿈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나에게 준 장갑이라고 생각한다. 장갑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있을 것이다. 꿈은 은유와 상징이다. 이 은유와 상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물론이다. 자의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자면 인류가 지금까지 꿈에 대해서 연구해 온 심리학적 성과를 공부할 필요성을 느낀다.
어찌 되었든 오늘 꿈은 기분 좋은 꿈이었다. 뭔가 반가운 사람이나 즐거운 일과 만날 것 같은 기분이다. 그런데 나도 마찬가지지만 대개 사람들은 꿈의 예지능력에 대해 관심을 갖는데, 그보다는 꿈이 가지고 있는 어떤 근원적인 메시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꿈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지만, 그런데 막연한 추측 수준이지만 인류의 나아가서는 우주의 정보바다라 부를 수 있는 꿈이 오는 원천이 있다고 느껴진다. 그렇다면 꿈이란 그 원천과의 연결인 셈이다. 사소해 보이고 무의미해 보이는 꿈에도 엄청난 정보가 담겨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나를 도와주려는 미지의 존재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의 일상이 귀하고 아름다운 느껴진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현상 너머에 미지의 신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삶은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 꿈을 돌아보며 내 삶을 아끼고 좀더 진지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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