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멍청한 건지 교활한 건지

샌. 2006. 3. 27. 12:50

어제 롯데월드에서 무료입장하려던 관객들이 몰려든 인파에 넘어지며 수십 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났다.

롯데월드는 지난달에 일어난 안전사고를 사죄한다는 의미로 일주일간 선착순 무료입장 시킨다는 광고를 냈고, 공짜를 바라고 모여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 일어난 것이다. 급기야는 개장 시간을 얼마 넘기지 못해 행사를 취소했다. 어제 그 앞을 지나간 지인의 얘기로는 엄청난 사람들 때문에 교통이 정체되어 중요한 약속 시간도 지키지 못했다고 한다. 안에서의 사고도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도 이런저런 피해를 겪은 셈이다.

무료 관람이라는 카드를 걸었을 때는 이런 사태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건만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 여러 사람을 다치게 만든 것은 일차적으로 롯데 측에 책임이 있다.


이번 사태를 보며 우리나라 유수의 대기업의 행태에 다시 한 번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다. 기업을 이끌어가는 조직이 좀 심하게 말하면 무뇌아들의 집단처럼 보인다. 아니면 지나치게 교활하든가.

선입견인지는 몰라도 롯데는 자주 이런 식으로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며 자사를 선전해 온 측면이 있었다. 주로 소비 계열의 회사를 운영하는 재벌이라 소비자들이나 대중들의 심리를 손금 읽듯 훤히 꿰고 있을 사람들이 혼란이 일어날 것을 뻔히 알면서 어떻게 이런 이벤트를 기획했는지 상식적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어쩌면 대중들의 호기심을 적당하게 자극하며 교묘하게 이용해 먹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도 드는 것이다.


며칠 전 원로 한 분이 우리 사회의 의식 수준을 중학교 2학년 수준이라고 평가한 발언이 있었다. 전에는 그래도 중학교 3학년 수준은 되었는데 조중동 때문에 2학년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히딩크 같은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 사회의 의식 수준은 진지하게 평가할 가치도 없다. 우리 국민들이 무엇에 흥분하고, 집단적으로 열광하는지를 관찰해 보면 나로서도 그분의 말씀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아마 롯데라는 기업은 이런 국민 수준을 가장 정확하게 꿰차고 있으면서 그걸 가장 잘 이용하는 기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롯데는 최근에 잠실에다 세계 최고층인 112층의 빌딩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그 빌딩 모양이 파리의 에펠탑과 똑같아서 사람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내 눈에도 그것은 천박성의 극치로 보였고, 만약 그대로 지어진다면 나라 망신에 다름 않아 보였다. 반대 여론이 거세니 롯데는 곧 다른 모델을 선보였는데, 그것도 품위나 예술적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롯데는 이런 식으로 사회의 호기심과 비판을 끌어들인 다음, 치고 빠지는 식으로 사태를 해결해 나가는데 발군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번의 롯데월드 사고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되어지는 것이다.


이왕 무료입장을 시키려면 차라리 돈이 없어 그동안 롯데월드에 가보지 못한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어주고 홍보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역시 롯데의 생각은 독특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것은 우리 같이 수준이 낮은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평범한 생각이라는 것을 이제 확인했다.

일견 무식해 보이는 선착순 입장을 내걸고 아수라장을 만들며 그 파급효과를 노리는 역발상은 감히 아무나 할 수 있는 생각이 아니다.


하여튼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열 받게 만들었으니 롯데의 전략은 이번에도 성공한 듯 하다. 그들은 아마 지금쯤 막이 내린 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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