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균형과 조화

샌. 2006. 3. 23. 15:46

삶에는 다양한 측면이 존재한다.

어떨 때는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신비가 서려있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마치 삼류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적이고 가볍게 보이기도 한다. 이 중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느냐에 따라 사람의 삶의 태도는 천양지차가 난다.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함부로 살기가 두려워진다. 삶의 본질에 접근하고 싶고, 그대로 따라 살고 싶어진다. 이런 태도를 삶의 진정성이라고 불러본다.

그러나 삶이란 사람과의 관계인데 어떤 진정성도 보편성을 얻지 못한다면 의미를 찾기가 어렵다. 유아독존으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는 몰라도, 사회생활이 세상과의 관계를 뜻하는 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무의미성이야말로 의미를 찾는 사람에게는 최대의 적이다.


삶의 진정성과 보편성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일이야말로 인생 최대의 숙제며 딜레마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삶의 진정성을 찾아 자신의 세계에 묻히는 것은 보편성으로부터 멀어짐을 뜻하고 대개 고독과 소외로 이어진다. 또 삶의 보편성에 매몰되면 본질적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표피적 욕망 만족 단계에 머물게 된다. 그 어느 쪽도 진정한 삶의 태도가 아니다. 물론 자기만족 속에서 별다른 회의 없이 보낼 수도 있다.


요사이 부쩍 균형과 조화라는 말이 자주 떠오른다.

우주가 작동되는 원리 하나가 있다면 아마 ‘균형과 조화의 원리’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우주는 음과 양이라는 상반되는 성질이 결합하여 나타나고 있지만 그 둘이 배타적이 아니라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코스모스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작게는 인체로부터 생태계에 이르기까지 동일하다고 본다. 인체의 조화가 깨지면 병으로 나타난다.


개인 생활 또한 마찬가지다. 지나치게 한 쪽으로 편향된 길은 과부하가 걸리고 마찰음이 생긴다.

옛 사람이 중용이라고 부른 그 길은 결코 가운데를 가리키는 중간의 길이 아니라 모든 것이 아우라진 조화의 길일 것이다. 우리 삶의 행복은 바로 그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균형 잡힌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믿는다.


삶의 진정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보편성을 잃지 않는 길, 지금 바라보는 그 길 역시 나에게는 외줄타기 마냥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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