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펌] 세 이야기

샌. 2005. 10. 20. 18:21

구속 수사 이후 (도종환)

 

그 해 유월, 여름 햇살처럼 여론도 따갑게 끓어오르던 날 나는 교무실에서 성적표를 쓰고 있다가 다섯 명의 건장한 경찰들에 의해 끌려가 구속되었다. 벌레가 기어다니는 마룻장 날바닥에 앉아 밥을 먹었고, 변이 직접 내려다보이는 변기통 위에 앉아 하루 세 번 식기를 닦았으며, 사회적 이름을 빼앗긴 채 가슴에는 수인번호 376번이 달려 있었다. 검찰에 불려갈 때마다 거미줄에 날개를 묶인 곤충처럼 포승줄로 결박당하였다. 검찰 조사를 받는 시간보다 조사를 받기 위해 아침부터 하루 종일 결박당해 있는 것이 더 힘들었다. 반말로 이름을 부르고 내 시집 제목을 거론하며 비웃어대고 내가 무슨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특정집단의 사주를 받은 것처럼 몰아부칠 때면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런 모멸의 순간보다 더 힘든 것은 제자들과 부딪치는 시간이었다. 사람을 찌르고 들어와 있던 제자가 복도에서 밥통이나 국그릇을 밀고 다니며 퍼주는 밥을 식구통으로 받고 있을 때였다. 견딜 수 없는 참혹함과 난감함에 몸이 떨렸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목욕시간이었다. “목욕 준비!”라는 명령이 시달되면 모두 발가벗고 몸에 비누칠을 한 채 서 있어야 했다. 교도관이 차례로 방문을 따면 복도 끝에 있는 수도까지 달려가 대야로 서너 번 끼얹어 주는 물을 뒤집어쓰고 돌아오는 목욕이었다. 그런데 차례로 방문을 따주면서 목욕을 시키다보니 옆방에 있는 제자와 복도에서 만나게 된다. 발가벗은 채 제자 앞에서 뛰어다녀야 하는 시간은 나에게 가장 큰 형벌 중의 하나였다.

 

그런 수치심과 모멸감을 견디는 것보다 더 마음 아픈 것은 밖에 두고 온 자식들이었다. 엄마도 없는 자식들을 두고 너마저 감옥에 들어가면 고아가 되는 아이들을 늙은 우리가 책임지라는 말이냐고 아버지는 펄펄 뛰셨고, 나와 의절하겠다고 하셨다. 아들이 처음 보낸 글씨로 편지를 보냈을 때는 정말 많이 울었다. 남의 자식 바르게 가르치자는 일로 바쁘게 뛰어다니다 내 자식에게 글씨 한 번 가르치지 못하고 감옥에 들어와 있는데 저 혼자 배워서 쓴 서툴고 비뚠 글자 하나씩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감옥 벽을 뾰족한 것으로 그어 십자가를 새겨놓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울면서 기도했다. “하느님, 당신이 이 아이들을 키워주십시오” 하고.

 

재판을 받는 날 재판시간에 맞추기 위해 집안 전체가 정신없이 분주한 사이, 어린 딸은 놀이터에 나가 놀다가 떨어져 팔이 부러졌고 뼈가 조각조각 나서 오래 고생하였다. 내가 구속되면서 우리 집안도 나도 그처럼 조각조각 났다. 그 사건으로 내가 대법원에서 받은 최종 판결은 벌금 30만원 형이었다. 자동차 접촉사고를 내도 벌금 30만원은 더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나는 구속되었고, 학교에서 해임되었으며, 법적 인정을 받고 다시 복직할 때까지 10년간 해직교사로 살아야 했다. 석방 후에도 버클리대 강연 초청을 받았지만 구속 전력 때문에 내 보내주지 않았다. 국외에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제동이 걸렸다.

 

그 독재정권 시절 검찰권의 중립, 사법권의 정의를 위해 위에서 내려오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며 ‘사즉생’의 각오로 사표를 내는 검사를 나는 보지 못했다. 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으면 법에 근거한 이성적인 논의와 절차를 거쳐 재판하되 무조건 사람을 구속해서 재판해야지만 검찰의 권위가 선다는 생각은 바뀌어야 한다. 나하고 생각이 다르면 반드시 구속해서 처벌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도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감옥에 보낸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평양에 가서 살라고? (김갑수)

 

야만의 언어가 있다. 모든 이성적 사유를 한방에 끊어버리고 오로지 발가벗은 힘의 논리만이 작동되게 만드는 표현. 가령 현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두고 “너 수구꼴통이지!” 하고 되받아 버리면 대화는 끝이다. 이럴 때 상대방의 반응도 자동응답기처럼 되돌아온다. “그럼 너는 뇌(노)사모지!”

 

소위 ‘강정구 교수 발언’을 두고 또다시 야만의 언어가 춤을 춘다. 그 극치가 이런 것.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평양 가서 살아라!” 도대체 이게 말인가? 그런데 그것도 ‘말’이라고 일간지 사설에 버젓이 실린다. 정확히 인용하면 이렇다. ‘남한이 공산체제가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애통해 하는 강 교수의 진심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학문의 자유라는 장막 뒤에서 이 체제에 악담을 퍼붓는 강 교수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왜 평양으로 가서 살지 않는 것인가.’

 

강 교수가 무엇을 애통해 했다는 것인지 정확한 내용을 찾아보니 그의 비교사회학 논문의 각주에 나오는 짧은 인용이다. 해방공간에서 한반도 내부의 사회상황은 사회주의 체제를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았다는 객관적인 사실. 그 한 예증으로 ‘1946년 미 군정청 여론조사에서 공산·사회주의 지지는 77%, 자본주의 지지는 14%였다’는 사례 보고였다.

 

한나라당 발표를 보니 강 교수의 아들이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모양이다. 한번 상식선에서 생각해 보자. 신문사설이 궁금해 하는 ‘강 교수의 진심’, ‘강 교수의 정체’를 정말 모르겠는가. 물론 나는 그와 일면식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그가 세계 최빈국 독재체제의 일원이 되지 못해 안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만은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이 상식이다.

 

국가보안법 개폐 논란으로 시끄러울 때 어떤 노의사와 실제로 오갔던 대화내용이다. 칠십을 바라보는 그이는 진심으로 걱정스러워하며 말했다. “만일 철없는 젊은이들이 광화문에 모여 ‘김정일 만세’를 외치면 그걸 어떻게 막겠는가?” 비슷한 우려를 방송토론에서도 들은 적이 있다. 답답한 노릇이다. 어르신께 최대한 예의를 갖추느라 애쓰기는 했지만 내 답변은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렇게 하라고 내버려 두세요. 기막혀 웃지 도대체 누가 동조하겠어요?” 당신이라면 장군님의 현수막이 비에 젖는다고 울부짖는 북한 처녀들을 따라 울겠는가.

 

나이 60대 중반 이상, 마주 보고 총부리를 겨눴던 세대에게 김일성, 김정일을 객관화하라는 주문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뇌리에 북한 지도자는 적군이자 원수일 따름일 것이다. 하지만 사십대 막바지의 철없는 젊은이인 내게 북한 체제는 연민과 우려의 대상일 뿐이다. 특히 의사(擬似) 왕조를 구축한 김일성이 뿔 달린 괴물이거나 ‘몽둥이로 때려 잡아야할 미친 개’가 아니라 ‘마지막 비동맹’의 고뇌를 온몸으로 체현했던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공부가 필요했다. 남북한이 결코 제 1세계의 성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구꼴통’들은 정말 모르는 것일까.

 

이제는 자신의 세대를 스스로 선택하는 시대가 되었다. 물리적인 나이보다 그의 생각이 더 중요한 요건이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정구-천정배-김종빈으로 이어지는 숨바꼭질에서 한나라당이 공식 발표한 내용은 당의 세대를 짐작하는데 참으로 시사적이다.

 

‘노무현 정권은 적화통일을 옹호하고 김일성 체제를 찬양하면서 국가 정체성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교수 한명을 구하기 위해 너무 많은 값을 지불했다.…검찰총장의 사퇴는 자유민주주의를 압박하는 노무현 정권의 독재에 대한 처절한 항거로 기록될 것이다’

 

이철수의 '매일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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