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식인(食人)의 교육

샌. 2005. 10. 10. 15:24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아버지는 말하셨지 그것을 가져라”

요즘 뜨고 있다는 광고에 나오는 노래 가사이다. 비행기 안에서 젊은 여자들의 시중을 받으며 희희낙락하고 있는 한 젊은이가 나오는 무슨 카드 광고인데 내가 가진 선입견인지는 모르지만 가진 자들의 이기적이고 향락적인 풍조를 그대로 보여주고 부추기는 것 같아 TV로 이 광고를 볼 때마다 영 떨떠름하다. 전에 유행했던 “부자 되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느꼈던 거북스러움이 여기서도 느껴진다.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똑 같은 세상을 보더라도 천양지차가 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모양새나 지향하는 방향, 사람들의 의식구조에 대해서 심각하게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있고, 잘 나가는 사회의 역동성의 한 측면이라고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비관론자이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우리 사회가 아무래도 정상적이 아닌 병든 사회로 보인다. 그것도 중증의 암 환자인 것만 같다.


우리 사회의 병폐 중 하나는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1등 독점주의이다. 1등만이 기억된다고 하는 어느 대기업 광고도 있었지만, 1등의 강조는 1등이 되어야만 사회에서 모든 혜택을 누리고 대우를 받으며 잘 살 수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패자는 생존경쟁에서 탈락한 무능력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아무리 천한 대우를 받은들 할 말이 없다. 1등이 존경받는다는 것과 그 1등 자격이 차별화된 세상을 만들어도 괜찮다는 말은 같은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우승과 1등, 승리에 집착하는 나라도 없다고 한다. 올림픽을 비롯한 스포츠 종목에서부터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마치 국민들이 집단적인 패배 콤플렉스에 걸려있는 것 같기도 하다. 1등은 영웅이 되지만 2등은 눈물을 흘린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싸우고 당당히 은메달을 목에 거는 외국 선수들의 모습이 어떨 때는 이상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편안하고 존경받으며 멋지게 살려면 1등이 되어야만 하는 사회는 늘 긴장과 갈등이 잠재해 있다. 한국의 어머니들이 그렇게 자식 교육에 목을 매는 이유는 1등이 되어야만 내 새끼가 세상을 수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의 장래를 위해서는 앞뒤 가리지 않고 모두들 이 무한경쟁의 대열에 뛰어든다.


우리 사회의 이런 병적인 요소들이 적나라하게 모여 있는 곳이 일선 교육 현장이다. 학교는 아이들을 병든 사회체제에 불만 없이 적응시키기 위해 단련시키는 훈련소다. 그 중에서도 인문계 고등학교의 교육 목표는 오직 일류 대학 진학이다. 그 목표를 위해서는 절차상의 정당성도 인정사정도 없다. 아이들의 심성이 황폐화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일류 대학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더 나은 직업과 더 끝발 부리는 인생을 위한 1차 관문을 통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학교는 살벌한 점수 따기 각축장으로 되었다. 점수 0.1점을 가지고 학생들 사이에, 학생과 교사 사이에 얼굴을 붉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입시경쟁이야 예전에도 있었지만 아무리 돌아보아도 지금처럼 살벌하지는 않았다.


마침 근착 ‘녹색평론’에 현직교사가 쓴 글이 한 편 실렸는데 이분의 현실 진단에 대해서 똑 같이 공감하며 글의 일부분을 옮겨본다.


‘지난 100년 동안 이 땅에서 이루어진 교육은 결국 아이들로 하여금 ‘사람을 잡아먹게끔’ 맹렬하게 가르쳐 키워 세상에 내놓은 것 이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대한민국 초대 문교부 장관인 국수주의자 안호상이 제시한 ‘홍익인간’이라는 교육이념은 지금도 건재하지만, 이것이 수십 년 세월 동안 의심받지 않고 살아남은 것은, 아무도 그 이념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성인 이후의 삶이란 12년간의 초중등 교육이 제 몸에 퍼뜨린 독 ― 이기심, 질투심, 열등감 ― 과 싸우기 위해 뒤늦은 사춘기로 접어들거나, 아니면 그 독을 온몸에 더욱 퍼뜨려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제 우리 시대의 교육을 통해서는 열일곱의 나이에 인류의 미래가 농업에 있음을 직감하고 농민들을 위한 야학을 열고 계모임과 독서회, 농민 생산자 협동조합을 조직하면서 농민들을 위한 교과서《농민독본》을 저술한 윤봉길 의사(1908-1932)와 같은 인물을 영원히 길러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또한 열여덟의 나이에 일제의 법정에서 일본 법률로 일본인에게 재판받는 것이 부당함을 논변한 유관순 열사(1902-1920)와 같은 치열하고도 조숙한 정신 또한 길러낼 수 없을 것이다. 윤봉길, 유관순과 같은 강파른 시대의 영웅적인 인물을 차치하고서라도, 우리의 교육은 17-18세 무렵이면 사람살이의 이치를 알고 살림살이의 기초를 터득함으로써 자립적인 성인의 삶을 살아가게 했던 저 전통사회의 교육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사람살이의 이치가 되건, 살림의 기본이 되건 지금 우리 교육은 ‘아무 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그리하여 스무 살이 아니라 서른 살이 넘어도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부모 세대의 영향력에 철저히 기생하는 ‘어른 아이’들만 끝없이 양산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런 현실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은 아니며, 최소한 100년을 더듬어갈 수 있는 유구한 역사가 있다. 구한말과 식민지 시대, 조선 땅을 밟았던 외국인들이 혀를 내둘렀던 한국인들의 유별난 교육열은 기실 교육을 통해 자기 자식을 ‘사람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볼 수 없었다. 그것은 교육의 장에 펼쳐진 지위 경쟁의 앞자리에 올라타, 군림하는 지위에 올라주기를 바라는 소망의 표현이었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 삶을 지배해온 논리는 노동하는 삶에 대한 철저한 수탈과 모멸스런 비하였으므로 이러한 소망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내면화한 복종적인 신민(臣民), 즉 바보스러운 영혼 없는 인간을 길러냄으로써 영속적인 지배체제를 구축하려 하는 국가, 기술과 노동력이 필요한 자본, 그리고 자기 자식이 땀 흘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 이 3자가 결탁하여 이 형편없는 교육체제는 성립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지난 50년 세월 동안 한국사회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경제성장이라는 가치로 단일화되어 있었고, 대안적인 삶의 출구는 원천 봉쇄되어 있었다. 우리사회 구성원들에게 좋은 삶이란 ‘겨우’ 좋은 대학 가서 좋은 직업 얻어서 그럭저럭 사는 것에 불과했고, 이것을 회의하는 사람들에게 그 너머를 응시할 상상력은 허용되지 않았다. 교육은 ‘공개적 지위 경쟁의 장’으로 이 닫힌 사회가 베풀어준 유일한 출구였다. 그리하여 한국의 ‘학생’들은 이 경쟁의 장에서 다만 극기와 절제의 전사였고, ‘누군가를 잡아먹어야 자기가 사는’ 이 야만적인 논리를 내면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한국 교육에는 몇 가지 특이한 현상들이 있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내가 사는 밀양 인근의 어느 고등학교는 한때 기피학교로 여겨지다가, 아이들의 사생활을 완전히 몰수하는 것을 그 학교의 전통으로 자리 잡게 함으로써 명문으로 떠올랐다. 대개의 한국 고등학교는 반교육적이면 반교육적일수록 인정받는다. 교육행정관청이 부과한 최소한의 기준도 무시하고 반칙을 많이 하면 많이 할수록, 축제, 동아리 활동, 방과 후 자기 주도적 예체능 교습 따위를 허용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리하여 진정한 의미의 교육활동을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그 학교는 ‘열심히 하는 학교’로 인정받는다.


서울의 몇몇 사립대학이 부자와 특권층들이 몰려 사는 지역 학생들을 ‘대놓고’ 우대하여 선발해가는 것을 두고서도, 그들이 ‘명문대학’이므로 할 수 있는, 다른 ‘비명문대학’들은 흉내낼 수 없는 특권적 행동으로 인정해 주기도 한다.


내가 사는 밀양도 예외는 아니지만, 지방 소도시에서 통용되는 ‘인재관’은 참으로 독특하다. 무엇보다 ‘인재’란 그 지역 출신이지만 거기에 살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지역사회로부터 멀리 떨어질수록, 지역사회에 직접적으로 공헌할 가능성이 낮으면 낮을수록, 어떤 면에서는 지역사회를 착취할 가능성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훌륭한 인재로 여기는 것이다. 가령, 며칠 전 이곳 밀양의 지역신문은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도청 테이프’의 등장인물로서, 권력 핵심부에 ‘떡값’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모 재벌의 2인자를 새삼 ‘지역 출신 인재’로 크게 소개하기도 하였다.


한국인들은 모두 학교교육의 불행한 자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학교교육을 둘러싼 이 모든 관행들은 지금껏 빈곤과 독재라는 ‘한국적 상황’의 산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경제적인 풍요와 정치적 민주화가 우리사회의 폐쇄성을 누그러뜨리고 다층적인 가능성을 열어놓는다면 학교교육의 파행이 누그러뜨려질 것을 기대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제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지금 한국인들이 향유하는 의사표현의 자유와 민주적 역동성은 놀랄 만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고, 아이들에게 지워진 짐은 더욱 무거워지며, 교육의 장에서 횡행하는 ‘식인’의 논리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경제성장과 민주화, 지난 50년 동안 한국사회가 이루어낸 이 커다란 변화 앞에서도 그러나 우리 교육의 미래를 이토록 암담하게 느끼는 것은 어떤 연유인가. 나는 내가 직접 몸으로 겪어 아는 것으로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시도하려 한다. 1980년대에 중고교시절을 보낸 나는 10여년 뒤 같은 공간에서―나의 근무지는 나의 모교이다―교사로 살아가므로 이것은 비교적 실제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의 부모는 대개 가난했고, 그들 또한 꽉 막힌 사회체제 속에서 고단한 나날을 살아갔을 것이다. 우리들 또한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학교생활은 참으로 힘들었다. 학교 안에서는 구타가 만연했고, 교사 자신이 필시 군대시절 당해보았거나 시켜보았음에 분명한 잔인한 체벌이 공공연했다. 한 교실에 60명씩 밀어넣은 콩나물시루 같은 학급에서 우리들 개별 존재의 개성이나 인격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반교육적이고 속물적인 논리가 우리의 숨통을 옥죄었던 것도 지금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학교 이후의 시간은 전적으로 우리들의 것이었다. 좀더 어릴 무렵에는 부모의 심부름을 하지 않을 때라면 밤이 어두워질 때까지 공을 차거나, 숨이 차도록 뛰어놀 수 있었다. 학원 수강이란 대도시 학생들의 전유물이었고 내가 살고 있던 그 당시의 밀양은 극소수 부잣집 아이들이나 과외를 받았을 뿐 변변한 학원도 없었다. 물론 0교시 보충수업도 없었고, 야간자율학습과 방학 중 보충수업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고등학생이었던 내 친구들 중에는 학교가 끝나면 집안의 일꾼으로 돌아가 경운기를 몰거나 철가방을 들고 자장면 배달을 하는 아이도 있었다. 시내로 유학을 나온 시골 출신 친구들은 자취방에 둘러앉아 소주를 마시거나 담배를 배우기도 했다. 더러, 답답할 때면 자전거를 타고 밤이 깊도록 시내를, 인근 논밭길을 헤매기도 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방안에서 뒹굴기도 했다. 결코 교육적으로 긍정적인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이 시절의 경험은 돌이켜보았을 때 학교교육에서 뒤처진 많은 아이들에게도 매우 ‘인간적인 기억’으로 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 아이들의 방황과 노동에는 무언가 스스로와 정직하게 대면케하는 자기성찰의 힘이 있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친구’와 ‘골방’, 그리고 온전히 스스로에게만 열려 있는 ‘무위(無爲)의 시간’이다. 흔히 교육의 중요한 하위 요소로 인정하는 학습, 노동, 사색은 ‘친구’와 ‘골방’, 그리고 ‘무위의 시간’ 속에서 스스로 구성하는, 정확히 말하자면 ‘스스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구성되는 비율이 한 존재의 정신적 외양을 결정한다.


나의 성장기에 학교 바깥에 그나마 열려 있었던 이러한 인간적 성숙의 가능성, ‘친구’와 ‘골방’, 그리고 ‘무위의 시간’은 이제 완전히 박탈당하고 말았다. 경제성장이 낳은 물적 풍요의 상당한 잉여 부분은 이른바 ‘사교육’이라는 시장에 투여되었다. 대여섯 살 무렵부터 아이들은 학원으로 뺑뺑이를 돌기 시작하여 대학 입학 직전까지 그 순례를 멈추지 않는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학습에서 앞서나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모두가 추구한 ‘부분적 합리성’은 곧 ‘총체적 비합리성’을 낳았다. 조금 더 빨리 이동하기 위해 앞 다투어 구입한 자가용이 결국 자동차로 꽉 막힌 도로를 낳은 것처럼, 앞서가기 위해 사교육에 아이를 맡겼는데 모두가 이 대열에 동참함으로써 결국 아무도 그 목적을 이루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사교육이란 한국 부모들의 커다란 ‘두통거리’로 남았다.


아이들은 어떻게 변한 것인가. 이제 아이들에게 ‘친구’란 학원에서 만나 같이 학원차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존재가 되었다. 아이들이 ‘홀로’, ‘스스로’ 존재하는 시간은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아이들의 시간을 거의 장악한 이 시스템 속에서 아이들은 하나의 대상물, ‘객체’가 되었고, 말하자면 ‘교육 시스템’의 우리에 갇혀 최적화된 환경이 제공해주는 ‘교육 서비스’를 오물오물 받아먹기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


학교에서 독서과제를 내주면 학원 강사가 대신 읽고 친절하게 요약된 자료로 안내해 주며, 학교에서 서술형 논제를 미리 내주면 또 학원 강사가 인터넷과 서적을 뒤져서 모범답안을 작성하여 제시해준다. 어느 사교육의 공간을 가든, 학원 강사든, 과외선생이든, 태권도 사범이든, ‘자격증을 가진 어른’들이 아이들을 안내한다. 이제 아이들이 관여하는 모든 시간과 요소를 세세하게 프로그래밍화하여 체계적으로 구성하지 않으면 교육활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일과 관련하여 엄청난 오해와 왜곡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이제 교육의 장(場)은 변인들을 조작하여 프로그래밍화한, 이를테면 파블로프가 개를 가두어놓은 실험상자 같은 것이 되었다. 골방에서 친구들과 나누었던 어설픈 인생 상담은 점점 비일상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교육받은 ‘전문 상담사’가 직접 학교를 방문하여 진행하는 ‘상담 프로그램’이 그 자리를 서서히 대체해가고 있다. 체험학습 ― ‘체험’도 ‘학습’하는 것인가 ― 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전문 지도자가 아이들의 ‘체험’을 안내하고 조직화한다. 그리하여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 전문적인 ‘평생교육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은 공적 영역이건 사적 영역이건, 수없는 교육기관을 전전하며 끝없이 무언가를 배운다. 그러나 진정 어떤 ‘만남’과 ‘배움’이 그 속에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사람과 사람의 만남으로, 땀과 숨결의 나눔으로, 생각지도 않았던 그 많은 무정형, 비정형의 시공간에서 ‘선물’처럼 찾아와 한 존재를 정신적으로 두들겨 키웠던 ‘만남’과 ‘배움’의 의미는 완전히 잊혀지고 말았다. 이제 한국에서 교육은 3차 산업, ‘서비스업’의 일종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 아이들이 방학을 이용하여 군부대에서 받곤 하는 이른바 ‘극기체험 훈련’ ― ‘극기체험’을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 ― 장면을 볼 때마다 심한 뒤틀림을 느낀다. 군복을 갖춰 입은 해사한 여학생, 남학생들이 고무 보트를 머리에 이고 마치 ‘군인처럼’ 바닷가로 뛰어드는 장면은 과연 얼마나 변태적인 것인가. “잘 할 수 있습니까?” 군인 아저씨는 거만하게 묻는다. 흙탕으로 범벅이 된 안경잡이 여학생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열씸히 하겠슴다”를 복창한다. 모든 것을 다 박탈해 놓고, 대체 무엇을 잘 하라는 말인가. 그리고 아이들은 이제 더 무엇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인가.


민주주의의 진전은 교육제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일반 서민 대중의 영향력을 증대시켰다. 그래서 교육부장관의 교체 속도는 더욱 빨라졌고, 입시제도는 계속 바뀌어왔다. 그러나 한국 입시제도 개선의 역사란 하나를 잡기 위해 무언가를 내리치면 다른 곳에서 무엇 하나가 볼록 튀어나오는 두더쥐잡기 게임에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두더쥐잡기 게임은 늘 한 마리의 두더쥐만 볼록 튀어오르지만, 우리 교육의 장에서는 무언가가 계속 쌓여갈 뿐이어서 이 게임이 계속될수록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은 자꾸만 늘어났다. 봉사체험을 위해 도입된 봉사활동 인증제는 (그 취지와 무관하게도) 아이들을 방학 중 관공서 청소꾼으로 내몰았다. 한두 번의 지필고사로 점수를 매기는 것이 반교육적이라 하여 일상적인 활동을 평가에 반영하기 위해 수행평가제도가 도입되었다. 이제 중고교생들은 (그 취지와 무관하게도) 숙제더미에 파묻혀 밤잠을 설친다. 물론 봉사활동과 수행평가가 교육적으로 활용되는 드문 예가 있긴 하지만, 이 상식적인 행위를 위해 치러야 하는 교사와 학생의 수고는 참으로 비상식적인 것이다.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지만, 그 어떤 교육적 방안이건 ‘한국적 상황’이라는 특별한 필터를 통과하고 나면 반교육적인 골칫덩이가 되고 만다.


대입제도를 보자. 학력고사라는 단 하루의 시험으로 끝장내는 것이 비교육적이라 하여 대입 선발의 잣대를 다양화하게 되었다. 그래서 고교내신, 수능시험에다 대학별 고사(논술면접고사)까지 도입되었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수능시험과 대학별 고사가 강조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수능과 대학별 고사 준비하느라 학교수업을 등한시하고 학교가 ‘여관-숙박업소’처럼 변해갔다. 그래서 2008학년도 대입제도는 고교내신을 강화하게 되었다. 이제 아이들은 학교내신―수능시험―대학별 고사(논술면접)를 모두 준비하고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껏 고교내신을 절대평가로 매겨왔더니 ‘내신 부풀리기’ 현상이 만연하였고, 대학은 ‘변별력’이 없다고 고교내신을 무시하자 이를 상대평가 체제로 전환하였다. 이로써 생겨난 문제점은 익히 알려진 바다. 단적으로, 시험기간 친구에게 공책을 빌려주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재앙을 예비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한국의 청소년들이 이 지옥 같은 나날을 그나마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친구들과의 우정, 나뿐만 아니라 이 많은 친구들도 같은 처지에 놓여있다는 연대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우정’마저도 원천적으로 파괴하는 극단의 야만 속으로 모든 아이들을 밀어넣고 있는 것이다.


논술면접고사는 또 어떠한가. 소설책 한권 제대로 읽어볼 여유조차 박탈해 놓고선 아이들에게 인류 보편의 화두,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고상한’ 과제들과 씨름하게 만든다. 자갈밭에 볍씨를 뿌려놓고 벼농사를 짓겠다는 꼴이다. 결국, 천정부지로 치솟은 고액의 학원 수강료와 과외비, 학습지를 통한 첨삭 프로그램 등 ‘돈’에 전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는 이 대학별 고사는 단언컨대 (취지와 무관하게도) 부모의 경제력과 학생의 체력을 측정하는 기제가 되고 말 것이다.


삶의 연륜이 풍부한 성인들이라도 이 고달픈 나날들 속에서 온전한 정신을 갖고 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결국 아이들은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자폐적인 놀이 ― 컴퓨터 게임, 휴대폰, 판타지 소설 ― 에 더욱 강렬하게 밀착하게 된다. 이제 아이들에게 컴퓨터와 휴대폰은 기계가 아니라 신체의 연장, 곧 제2의 육체이다.


그리하여 아이들의 내면세계는 심각하게 황폐화되었다. 내가 국어교사로서 아이들에게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지금 아이들이 서정시를 쓰거나 서정시를 향유하는 능력이 눈에 띄게 퇴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년에 한두 차례, 아이들이 직접 쓴 시를 받아 평가할 기회가 찾아오지만 그때마다 나는 몹시 참담하다. 아이들이 자연을 묘사하는 것에 완전히 무력하다는 점, 힘들면 힘든 대로 피폐하면 피폐한 대로 자신의 내면을 표현할 수 있는 적당한 언어를 거의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마다 확인한다. 그러나 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자연에서 쫓겨나 ‘한국 교육’이라는 집단가학 시스템 속으로 유폐되어 서서히 영혼 없는 사회의 복제품이 되어가는 이 시대의 아이들. 그들이 서정시를 쓰지 못하고, 서정시의 언어를 ‘닭살스럽게’ 느끼는 것은 실로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한국의 교육제도는 민주주의의 진전으로 외양의 혁신을 더해간다. 이제 소수의 지배 엘리트들이 자신만의 이익을 반영하는 교육제도를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제도 변화가 계속될수록 교육은 더욱 나빠져만 간다. 제도 변화에 작용하는 것은 다수 대중의 힘인데, 어찌하여 교육은 나아지지 않는가. 그것은 ‘아이들을 사람답게 키워내는 것’보다는 ‘내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는 데 유리한 방식’으로 제도 개선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교육적 견지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는 우리 아이들의 삶을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룩한 경제성장이란 물질적 탐욕을 위함이었고, 민주화는 공익이 아닌 사익, 개개인 각자의 이기심을 제도적으로 보장받고자 하는 흐름으로 귀결되었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화가 구축한 것은 결국 ‘욕망의 시스템’이다.


따라서 한국에서 교육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이 땅에서 교육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와 같은 체제의 한 하위 영역이 아니라 바로 ‘욕망의 시스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이 거대한 욕망의 바다에 아슬아슬하게 떠 있는 섬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구성원들은 제도로서의 교육을 신뢰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제도의 개혁이 교육을 교육답게 세워주리라는 믿음이 없다. 이 총체적인 욕망을 어떻게 제도로써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교육개혁을 지향하는 교육노동운동조직, 시민사회단체들은 끝없이 국가를 향해 ‘교육공공성’의 입장에서 대입제도를 개선하고, 대학 서열화를 해소함으로써 학벌사회를 개혁할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형적인 중산층의 요구일 뿐이다. 중산층은 이 교육체제를 근본적으로 수정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다만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을 모두 장악한 상류층과의 지위 경쟁이 좀더 공정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결국 이들에게 교육은 자신의 사회적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만약, 진정으로 교육공공성을 추구한다면, 입시제도가 어떻게 바뀌어가든 학벌사회가 어떻게 되어가든 아무 상관없는 곳에 방치된, 그리고 점점 더 늘어가는 빈곤층 아이들, 가족해체를 겪은 아이들을 보듬어주기 위한 고민과 노력은 왜 기울이지 않는가. 지금 처치곤란한 공교육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실업교육에 활력을 불어넣을 방안은 왜 모색하지 않는가. 빈곤, 가족해체, 농업의 죽음, 농촌해체와 같은 한국사회의 심각한 구조적 문제에 대한 고민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채 입시제도의 손질에 집중하는 교육공공성이란 결국 중산층들의 계층 방어논리일 뿐이다. 따라서 현재 교육운동의 이름으로 전개되는 이 모든 노력들은 다만 이 체제를 부분적으로 손질함으로써 진정한 ‘배움’과는 하등 상관없는, ‘인적자원’의 등급을 감별하기 위해 아이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이 반교육적 체제, 욕망의 시스템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 뿐이다.


이제 우리는 익숙한 질문을 다시 해야 한다. “그렇다면 교육이란 대체 무엇인가.” 너무나 자명해서일까, 이제 이 땅에서는 교육의 본질에 대해 묻지 않는다.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일’이다. 온전한 ‘사람의 정신’이란 어떤 것일까.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불가해한 운명, 그러나 이 땅에 생명붙이로 빚어진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보다 힘없고 약한 것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자 하는 의지. 아름다움의 신비에 대한 찬탄. 이러한 정신은 그렇다면 어떤 조건에서 길러지는가. 나는 인간 정신이 온전하게 존립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가난’, ‘결핍’ 그리고 ‘힘없음’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진정한 교육은 바로 이 조건에서만 이루어지며, 이것들에 대해 성찰하고 연민하는 정신이야말로 교육하는 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믿는다.


지금 이 땅에서 ‘가난’과 ‘결핍’ 그리고 ‘힘없음’을 긍정하는, 그리하여 ‘진정한 배움’을 추구하는 교육기관은 존재하는가? 안타깝지만 거의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다만, 깜빡거리는 불빛처럼 야학과 공부방, 지역교육센터들만이 드문드문 살아남았다. 이제 우리 교육은 새삼스럽게도 이 야학과 공부방, 그리고 지역사회교육센터를 이끌고 있는 헌신적인 활동가들로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교육의 본질에 대하여, 그리고 ‘진정한 배움’에 대하여….


‘사람을 만드는 일’과 관련하여 이 시대는 유사 이래 최악의 조건에 놓여 있다. 이러한 때에 나에게 참다운 교육이란 이 형편없는 체제에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저항하는 것 외에 달리 다른 길이 있을 것 같지 않다. 1980년대 후반, 그 결성 당시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전교조가 지금 9만이 넘는 조합원을 자랑하는 한국 최대의 단일 노조가 되었지만, 실상 현실 속에서는 무력한 것은 이 욕망의 시스템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저항하기보다는 시민사회의 한 영역으로 남아 제도적인 손질에 치중하는 세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후반, 공교육 체제를 전면적으로 비판하면서 등장했던 이른바 대안교육운동 또한 지금은 태동 당시의 그 변혁적 열기가 사그라들었고, 서서히 공교육의 보족물로만 자리매김되어 간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한국 교육은 스스로를 자기 갱신할 수 있는 균형추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마치 브레이크 풀린 자동차처럼 갈짓자의 질주만을 계속하고 있다.


전면적인 불복종과 저항 말고 다른 길은 없다. 아이들이 이 교육체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배움이란 부정과 저항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른들의 이 ‘미친 놀음’을 부정하고, 저항으로 분출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마지 않는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가르침 또한 불복종과 저항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한국 교육은 그 시점을 유예할 수 있는 상황의 임계점을 이미 훌쩍 넘어버렸다. 올해 1학기 중간고사를 치르는 한 달여 사이에만 열한 명의 아이가 성적을 비관하여, 이 세상을 저주하면서 자살했다.


바라건대, 이 꿈같은 나날들 속에서 우리들이 기적처럼 깨달아 이 욕망의 시스템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칠 수 있기를, 그 작은 몸부림들이 모이고 모여 전면적인 불복종과 저항의 운동이 불 지펴질 수 있기를.


바라건대, 부모와 교사가 제 아이들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똑바로 쳐다보고, 그 순간 다가오는 죄의식과 책임감으로 각성할 수 있기를. 만약, 진정한 배움의 자리를 꿈꾸는 자라면, 점점 늘어만 가는 가난한 아이들의 삶의 현장으로 들어가, 누구도 보듬어주려 하지 않았던 그들을 품어 안아 주기를….‘


그러나 아무리 비판하고 한탄한들 대안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의 기본 틀이 변하지 않고는 어떤 새로운 교육 제도의 도입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런 탐욕의 시스템 하에서는 우리를 구원할 제도는 생겨날 수가 없다. 껍데기를 아무리 잘 포장한들 시간이 지나면 속의 썩은 물이 배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다시 우리들 의식의 문제로 돌아온다. 깨인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행동하는 다수가 될 때, 그래서 교육의 주체인 학생, 교사, 학부모가 개인의 좁은 울타리를 허물고 대의의 마당으로 나서는 것이다. 이런 때가 언제 올지는 모르지만 이 살인적인 교육 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불복종과 저항 운동이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어떤 지엽적인 교육 운동도 불가사리처럼 먹어치워 버리는 이 거대한 횡포에 맞서는 길은 그 길밖에는 없는 것 같다.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펌] 세 이야기  (0) 2005.10.20
한국인의 가치관  (0) 2005.10.15
재산세 6만원  (2) 2005.10.04
블로그 2년  (1) 2005.09.12
사는게 그런 거지  (1) 2005.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