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재산세 6만원

샌. 2005. 10. 4. 16:43

어느 날 동료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번 가을에 나온 부동산에 관한 재산세가 화제가 되었다.

대부분이 오른 재산세 때문에 현 정권과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여과없이 털어놓았다. 세금이 올랐지만 우리 사회가 공평하게 나아가는 방향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열 명중에서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각자 나온 재산세가 얼마나 되는지 묻기 시작했다. 제일 적은 사람이 10만 원대였고 대개는 20에서 40만 원대였다. 몇 사람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웃음으로 넘겼고, 제일 많은 사람은 100만 원 가까이 되었다.

거기에 모인 동료들의 나이는 대부분 4, 50대였다.

그런데 나에게 나온 재산세는 이번에 6만원이었다. 물론 거기에 모인 사람들 중에서 가장 적은 액수였다.

나이 50이 넘어서 재산세를 고작 10만 원도 못 낸다는 사실에 대해 사람들은 잘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다. 어디 숨겨둔 자산이 있겠지 하는 의심의 표정을 짓는다.

사실 이럴 때는 내 마음이 더 답답하다. 세상 사람들이 소위 재테크라고 하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다르게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을 그들에게 설득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설득이 아니라 내 생활을 보고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도록 해야 하는데 아직 그런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주눅이 들거나 가난하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부자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빈곤층이 5백만 명이 넘고, 땅 한 평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정확한 통계는 모르지만 무척 많다고 들었다. 그런데 나는 비록 시골이지만 내 이름으로 된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고 안정적인 월급도 받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재산세의 다소를 떠나 나도 가진 자임에는 틀림없으며 우리나라 빈부 격차의 문제에서 열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부(富)라는 것이 상대적이긴 하지만 우리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이 풍요로워졌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새로 나온 신모델 자동차에 관심을 갖고, 안락한 노후를 설계하고, 가끔은 해외 여행과 골프를 즐기고, 적든 많든 부동산이니 주식이니 재테크 하나씩은 할 줄 안다. 이것이 내 주변에서 보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내가 볼 때는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도 아직 부족하다고 끊임없이 욕심을 부린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상류층은 두 말 할 필요도 없지만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접어든 중산층 다수의 상대적 결핍감 및 도덕성의 결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부의 편중을 점점 더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얼마 전에 한 사람으로부터 "우리 나이쯤 되었으면 아파트 서너 채쯤 가져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을 듣고 환멸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의사 등의 고소득층의 소득 축소에 의한 세금 탈루 같은 것은 너무나 만연되어 있어 이젠 대부분 사람들이 그런 것에는 무감각해져 버렸다. 도둑놈들이라고 비아냥거리면서 정작 자신들도 그런 길을 거리낌없이 걷는다.

분명히 우리 시대 다수에게 지금은 풍요의 시대이다.

불가사의한 것은 경기가 나쁘다고 엄살을 부리는 사람들일 수록 이번 연휴같은 때 해외여행의 비행기 만석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 성장이 어떻고, 실업률이 어떻고, 재래시장 경기가 어떻느니 하고 침을 튀길 게 아니라, 가진 자들 우리가 이렇게 풍요와 안락을 누려도 되는지, 이런 생활이 혹 죄 짓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예민한 도덕성의 회복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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