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사는게 그런 거지

샌. 2005. 9. 5. 12:30

형제간의 우애도 어릴 적 얘기인가 보다. 철 없던 시절에는 같이 웃고, 뒹굴고 싸우고, 그러다가 금방 화해하고 세상에 둘도 없이 가까운 사이였지만 크고 나면 어떤 때는 남보다도 못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서로간에 너무 기대가 커서일까,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상처를 준다. 특히 형제간에는 돈 문제로 틀어지는 경우가 많다. 돈 한 푼 때문에 같은 피를 나눈 형제의 정은 헌신짝처럼 버려지기 일쑤다. 웬수가 되는 것이다.

 

자식도 마찬가지다. '품 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있듯고이 키워놓아도 다 크고 나면 잘 난 것은 제 탓, 못 난 것은 부모 탓이다. 그래도 부모-자식 사이의 핏줄은 어짜할 수 없다고 아무리 애물단지지만 그래도 내 자식이 아파하랴 부모는 늘 노심초사다.

 

우리 집안만 그럴까 하고 심각하게 고민이 되기도 하지만 술 한 잔 나누며 속내를 터놓고 보면 다른 집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부모에 대한 서운함, 자식에 대한 한탄, 형제간의 갈등이 없는 사람이 없다. 이런 사실에 안도를 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어디선가 재미있는 글을 보았다.

 

 

'나는 여자가 좋다. 여자가 없으면 이 세상 무슨 맛으로 살까?

어머니, 아내, 애인, 누나, 딸, 이 얼마나 아름답고 정겨운 여자들의 호칭인가!

그런데 이 아름다운 여자들 때문에 인생살이가 때로는 피곤하고 힘들어지니 이 어찌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난 비교적 여자가 많은 집안에서 자란 탓으로 제법 여자를 이해하는 편인데 그런 나도 가족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여자들의 처신과 언동에 대해서는 정말로 실망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들의 아집과 자기 합리화, 그리고 유치한 아전인수란.....

그러면 남자는 좀 낫느냐? 슬프게도 그것도 천만의 말씀이다. 남자가 앞뒤 모르고 자기 입장만을 고집할 땐 정말 주먹으로 한대 갈겨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주로 그 여자들과 관계되어서 일어나는 가족간의 갈등에 관한 얘기다. 가정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겪게 되는 우리들의 인생이야기인 것이다.


결혼해 부모슬하를 떠나 일가를 이루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되고 가슴 벅찬 일이다. 남편으로, 아내로서, 가장으로서 희망의 미래를 시작하는 때다. 부모 입장에서는 그래서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키는 일을 '필혼'이라고 하여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마지막 절차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식들 필혼시켰으니 이젠 죽어도 된다.'라고.


그런데 그 축복받은 일이 가족간의 새로운 갈등의 시발이 된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형제들이 하나둘씩 출가를 하면서 다른 집으로 가고 또 새 식구가 들어오면서 집안엔 전에 없던 묘한 기운이 일어나게 된다.

"나밖에 모르던 형이 저럴 수가?"

"어, 저게 내 동생이란 말이야?"

"그래도 누나는 믿었는데."


각자의 마음속에 이런 섭섭한 감정이 하나둘 쌓이면서 갈등이 깊어간다. 이러다가 우연한 계기에 서로의 갈등이 충돌하게 되면 드디어 한판의 전쟁이 치러진다.

어렸을 적 싸움은 그래도 최소한 한솥밥을 먹는 동지적 유대가 있었고 부모님도 해결의 중재자로서 절대권능을 유지하고 계셨으므로 싸움은 초동 진압되어 전면전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각자 짝을 만나 일가를 이룬 후의 싸움은 막가파식으로 번지기 십상이고 부모님의 중재 또한 오히려 싸움을 부채질하는 경우가 있어 화해에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가족간에는 피아의 구분이 생기고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 합종연횡을 거듭하면서 이 땅의 콩가루역사는 장엄하게 시작된다.


콩가루 집안의 갈등구조는 다단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제일 흔한 고부간 갈등, 그리고 형제-남매-자매간의 갈등, 동서간의 갈등. 그리고 마침내 부부간의 갈등!


갈등의 구조를 보라. 거의 대부분 여자와의 갈등이지 않은가? 형제간의 갈등도 그 원초는 여자들로부터 비롯된다.

원인이 무엇인가? 여자이기에 그런가? 견해의 차이인가?


고부간에 대해 생각해보자. 시어머니는 도대체 누구인가? 여자가 아니던가?

그러면 그녀도 옛날엔 며느리 아니었던가? 지금의 며느리는 또 누구인가? 역시 여자가 아니던가?

그녀 또한 미래의 시어머니요, 친정에 가면 시누이요, 시집에 오면 올케가 되지 않던가?

바로서면 '갑'이요 돌아서면 '을'인 이 천혜의 균등관계를, 여자면 누구나 운명적으로 공유할 수밖에 없는 이 상관관계를 여자들은 왜 멋지게 유지하지 못하는가?


시어머니가, 내 며느리는 내 아들에게 매사에 순종하고 가사 일은 당연히 모두 여자의 몫이고, 남편을 하늘처럼 떠받들기를 바라면서 시집간 내 딸은 남녀가 평등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모든 가사 일은 남편과 당당히 나눠서하고, 가급적이면 힘센 남자가 좀 더하고, 여자가 모든 면에서 대우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데서 갈등은 시작된다.

아들이 부엌에 들어가면 '천하의 바보쪼다'고 사위가 부엌에 들어가면 '이상적인 현대식 남편'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고의 모순에서부터 갈등은 시작된다.


올케가 내 친정엄마한테 말대꾸하는 것은 성격 못되고 싸가지 없어서 그러는 것이고, 내가 시어머니한테 대꾸하는 말은 경우 있는 논리로 잘못을 바로 잡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이 땅의 콩가루 역사는 시작되는 것이다.


갈등의 종합축소판이 바로 명절 때이다. 객지로 흩어져 '행복'하게 살던 가족들이 명절을 맞아 집안에 모이게 되면 고부간, 형제간, 동서간 갈등이 한꺼번에 표출된다.

시어머니의 며느리들에 대한 은근한 책망, 형님과 아우간에 어색한 덕담, 동서간의 꽈배기 대화가 만남에서부터 솔솔 싹트다가 결국 저녁상 술자리에서 갈등이 폭발하면 시댁에 있는 기간 내내 식구들 모두가 살얼음처럼 몸조심 말조심하다가 예정보다 하루빨리 거짓말을 둘러대고 서둘러 귀경하는 길, 남편은 아내로부터 귀가 따갑게 불평을 들어야 되고 식구들 또한 도마 위의 생선신세가 된다. 그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다음해 또 명절이 오면 남편은 당연히 당직근무가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게 어디 또 명절 때뿐이랴? 살다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지 않는가? 그중에서도 가장 예민한 게 돈 문제 아니던가? 어쩌다 부모님이 입원이라도 하시게 되면 입원비를 둘러싼 갈등은 또 어떻던가? 각자의 입장만을 생각한 불만이 속으로 쏟아진다.

‘모시는 사람은 빼줘야지, 모시는데도 돈이 드는데 이런 데는 빠져야지’ ‘장남이 달리 장남인가? 그런 거 안 하면 그게 무슨 장남이야?’ ‘몇 푼 되지도 않는 거가지고 맨 날 나누자니, 조용히 한번 내는 거 못 봤네.’ ‘뭐든지 형편껏 하는 거지’ ‘그렇게 하려면 나도 하겠네.’


생신이나 회갑연 등 부모님과 관련된 행사라도 치루게 되면 처음에는 비용 때문에 한바탕 신경전을 벌이다가 나중에는 부조금 분배문제로 또 곤욕을 치루지 않던가?

부모님 모시는 장남은 장남대로, 돈 더 낸 형제는 더 낸 대로, 부조 많이 들어온 형제는 그 형제대로 치사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설전을 벌이게 된다.

아, 듣고 보면 모두가 맞는 말이고 구구절절 멋진 논리로다!

이렇게 똑똑하고 총명한 사람들이 학교 다닐 때 그 명석한 머리로 공부나 좀 열심히 할 것이지.


가족간의 싸움엔 승자가 없다는데 그 비극이 있다. 모두가 패자일 뿐이다.

싸우고 나면 서로 상처받고 분하고 잠 못 이루고 하는 것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쌍방이 모두 겪게 되는 감정이다. 처음엔 모진 말을 많이 해서 상대를 아프게 하면 속이 후련하고 승리한 것 같지만 그런 경우일수록 시간이 가면 마음이 불편해져 두고두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형제들이여! 가족들이여!

이런 콩가루 집안이 우리 집안만 그렇던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모두가 그렇고 그렇게 살고 있다는 사실, 아니 오히려 우리 집은 양반이요, 남들은 말도 못 하겠더이다.

인생 오십쯤 되고 보니 그런 사실 알고도 남겠더이다. 산다는 게 들여다보면 모두 거기서 거기 아니겠는가?


이 땅의 뼈대 있는 자손들이여, 콩가루 집안을 부끄러워하지 마라.

이 세상에 콩가루 아닌 집안이 어디 있으며, 이 세상에 뼈대만 쌓여있는 집안이 어디 있겠는가?

사람 사는 게 다 같은 법!

한 꺼풀만 걷어보면 우리는 모두가 한 통속이라네!'

 

 

이제 곧 추석이 온다. 객지에 흩어져 있던 부모와 자식과 형제들이 오랜만에 만날 것이다. 형제들이 많고 북적댈 수록 다복하다고 말하지만그만큼 바람 잘 날 없는 것또한 사실이다. 어우러지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어찌 서로간에 서운한 일들 생기지 않겠는가?

 

그러니 우리 집안이 콩가루 집안이라고 의기소침 하지는 말자. 더구나 그 원인이 내 탓이라고 자책하지는 더욱 말자. 이 분 말처럼, 산다는 게 들여다보면 다 거기가 거기 아니겠는가? 네 집이나 우리 집이나 오십보 백보가 아니겠는가? 네나 나나 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사는게 다 그런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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