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별난 급훈들

샌. 2005. 8. 29. 14:40

지난 달이었던가, 서울대 총장이라는 분이 교육의 중요한 기능이 학생을 솎아내는 것이라고 해서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닐지 몰라도 자유경쟁을 내세우는 대표적 엘리트주의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마치 날 선 칼처럼 으스스하게 느껴졌었다. 교육이 솎아내는 기능이 있을지언정 그것은 부차적으로 언급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곧잘 교육을 농사에 비유하는데 농작물을 가꿔본 사람이라면 농사짓기란 솎아내는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을 북돋워주며 함께 키워가는 과정임을 안다. 도리어 연약한 쪽에 더 신경을 써서 물 한 모금이라도 더 주며 골고루 자라게 도와주는 것이다.

 

현재 인문계 고등학교는 성적지상주의가 활개치는 무한경쟁의 터다. 소위 '좋은 학교'란 유명 대학에 학생을 많이 진학시키는 학교이다. 그 과정이 어떠하든 진학율만 높으면 좋은 학교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학교는 입시 위주의 교육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 속에 들어있다.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올바른 시각이나 비판적 의식을 갖기 보다는 개인적 욕망 충족이라는 당근을 위해오늘도 피땀을 쏟는다. 그걸 방조하고 부추기는 것이가정에서, 학교에서 행하는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학교 교실에 걸려있다는 별난 급훈들을 모아 보았다. 이 중에는 내가 직접 본 것들도 있다. 코믹하게 봐 주기에는 우리의아픈 현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어 씁쓰레하기만 하다.

 

1. 대학 가서 미팅 할래, 공장 가서 미싱 할래?

솔직히 이런 것을 급훈이라고 교실 정면에 걸어놓는 용기와 뻔뻔함에 질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도 '미싱질'이라고 안 한 것이 고맙다고나 할까?

 

2. 10 분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

이 급훈을 처음 봤을 때는 꽤 충격을 받았었다. 더구나 그 반 담임이 윤리를 가르치는 내 앞 자리 선생님이셨다. '마누라 쟁탈전'의 최대 무기는 바로 학벌이다. 세상이 그러니 너희도 열심히 그 길을 따라가라!

비슷한 급훈으로 '10 분 더 공부하면 내 남편 직업이 바뀐다'라는 것도 있다.

 

3. 네 성적에 잠이 오냐?

성적이 나쁘면 잠도 편하게 잘 수 없는가 보다. 그런데 남을 뒤로 밀쳐내고 1등을 한 아이는 어떻게 편하게 잠이 오는 것일까?

 

4. 재수 없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가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코믹한 편이다.

 

5. 엄마가 보고 있다

집에서 아이의 교육을 감당하는 역할은 엄마의 몫이다. 차라리 각자의 책상 위에 엄마 사진 한 장씩 붙여놓도록 하자.

 

6. SKY Life!

무슨 위성방송 광고인 줄 알았다.

비숫한 것으로 'In Seoul' '2호선을 타자' 등이 있다.

 

7. 디스가 한 갑이면 공책이 두 권이다

호소하는 것이 이젠 너무나 눈물겹다. 설마 공책 회사 광고는 아니겠지.

 

8. 세계 정복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그러나 너무 꿈을 크게 키우다가 감옥 가는 일은 없어야겠다. 세계를 발 아래 밟겠다고, 그러나 이왕이면 포부가 더 커야지. '우주정복' 까지 나아가자.

 

9. 남자는 늑대

아마도 여고 교실에 걸려있는 것인가 보다. 그러나 사실을 직시하자. '우리는 여우다'라고 해야 소크라테스 가르침에 충실한 것이 아닐까?

 

10. 이쁘고 착한 내가 참자

공주병도 때로는 좋은 점도 있다. 제발 이런 환자들이라도 많아져서 내가 먼저 참고, 남에게 양보해 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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