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한 장의 사진(3)

샌. 2005. 11. 5. 12:33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발령받은 학교가 K여중이었다. 당시에는 대학 4년 동안의 성적순으로 발령을 냈는데 성적이 좋지 않았던 나는 정식교사로 발령을 받지 못하고 우선 임시교사로 이 학교에 근무하게 되었다. 지금으로 치면 기간제교사였던 셈이다. 그해 12월에 다른 학교로 정식 발령을 받았으니까 여기서는 약 6개월 정도 근무했었던 것 같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첫 직장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기억에 남는 학교이다. 부임하던 첫 날 교무회의 시간에 선생님들께 인사하던 내 모습이 선연히 떠오르는데 어느덧 벌써 30년이 흘렀다. 돌아보면 그때와 지금과의 거리가 한 호흡 간격만큼이나 짧게 느껴진다.


그때 내 자리는 시청각실이었다. 선배 선생님 한 분과 같이 있었는데 시청각기자재를 선생님들께 빌려주고 관리하는 일을 맡았다. 시청각기자재라고 해도 대부분 사용하는 것이 환등기 한 종류였다.

젊은 총각 선생이었으니까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것은 당연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미숙하고 실수투성이 교사였을 텐데 그런데도 아이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듣는 것이 무척 어색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도 몇 달 지나니까 당연히 그런가보다 하고 만성이 되어 버렸지만, 한 친구는 그것 때문에 몇 년 간이나 고민하기도 했다. 자신이 선생님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냐며 회의를 하더니 결국은 교직을 떠나갔다.


이 사진은 당시에 시청각실로 청소를 하러 오던 아이들과 찍은 것이다. 앞에 계시던 선배 선생님이 기념으로 찍어 주셨다. 이 아이들이 하나같이 청소를 얼마나 열심히 잘 하든지 안쓰러워서 그만 하라고 말리고 싶을 정도였다. 장난도 치지 않고 자기가 맡은 구역을 말없이 열심히 청소하는 모습은 내게는 무척 감명적이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달간의 모습이 여일하게 똑 같았다. 내 중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청소 시간에 제대로 청소를 한 적이 없었다. 장난치고 놀고, 그러다 오직 담임의 검사를 받기 위해 한다는 것이 거의 눈가림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여학생들은 전부 이렇게 청소를 열심히 하는 줄 착각하기도 했다.

이 아이들도 벌써 40대 중반의 아줌마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지금 저 사진에 나오는 나이의, 아니 그 이상의 아이들을 둔 학부모가 되어 아마도 한국 교육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아이들 뒷바라지에 노심초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시 K여중에서는 이런 사건도 있었다. 어느 날 방과 후의 여학생 화장실에서 신생아가 발견되었다. 임신을 한 여학생이 다급해지니까 화장실에서 혼자 출산을 한 것이었다. 담임이나 가정에서도 여학생이 숨기는 바람에 임신한 줄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배가 불러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지만 설마 임신이리라고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아이는 학교를 떠나고 일은 마무리되었지만 뒤에 들린 소식은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었다. 집이 가난해서 식구들이 한 방에서 지냈는데 오빠와 그런 관계가 맺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단칸방이라는 환경과 무지가 근친상간이라는 불행한 결과를 낳았다.


30년이라는 세월만큼 학교 환경이나 분위기도 변하고 사람들도 변했다. 사람의 근본 심성이야 짧은 세월에 변할 리 없지만,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그리고 교사들 상호간의 관계는 옛날에 비해 야박하다 싶을 정도로 삭막해져 버렸다.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위해 돈을 벌고 모아야 하는지 깊이 회의가 들 때가 자주 있다.

저 오래된 작은 사진을 보며 그래도 지금보다는 더 천진했고 순수했던 옛 시절이 자꾸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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