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극장에서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을 보았습니다.
제 기억이 맞는다면 한국영화를 영화관에서 본 것은 군대 있을 때 외출 나가 본 ‘겨울여자’ 이후 거의 30 년만입니다.
두 시간 동안 지루하지 않게 집중하며 볼 수 있었으니 한국영화도 이제 많이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군데군데 어색하고 어설픈 장면들도 있었지만 크게 트집 잡을 일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무엇이었느냐고 같이 영화를 보았던 아내에게 물었더니 ‘꽃을 꽂은 소녀’가 총에 맞아 숨을 거두는 장면이었다고 합니다. 그 소녀를 안고 한 동막골 주민이 “이 아이를 어찌 할까요?”하는 말이 애절하고 감동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역시 그 장면에서 눈물이 어렸습니다. ‘꽃을 꽂은 소녀’는 “아파, 아파”라고 하면서 둘러싸고 있는 주민들의 안타까움 속에서 죽어갑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분노가 없습니다.
미친 소녀는 어찌 보면 바보 같은 동막골 주민들을 대표하는 아이입니다.
그 아이의 죽음은 거대 폭력 앞에서 무참히 파괴되는 자연, 여린 생명들, 인간의 순수성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동막골이라는 폐쇄된 세상은 현실적으로는 존재하기 어려운 공동체지만 분명 우리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또는 있었던 순수성의 표상입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동막골과 그 주민들이 나오는 장면에서 보이는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고달픈 세상을 살고는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런 바보 같은 순수성에 대한 동경이 남아있음이 분명합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국가가 무엇이고, 이데올로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여러 번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토피아나 무릉도원으로 묘사되는 그런 이상향은 우리에게 불가능한 꿈일까요? 국가라는 제도적 권력의 힘이 최소화되고 대신에 인간의 자연성이 최대로 발현되는 공동체는 상상의 나라로만 머물러야 할까요?
누군가는 ‘동막골의 꿈’을 버려야만 잘 살게 된다고 하더군요.
이 정글의 법칙이 지배되는 세상에서는 지당한 말씀이겠지요. 만약 동막골과 그 주민들 같은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면, 그리고 자기들의 세계를 고집한다면 세상은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에서 폭격기 편대가 날아와 융단폭격을 가하듯 문명과 자본은 세상 끝까지도 그들을 쫓아가 박살을 내버릴 것 같습니다. 지금 세상은 그런 폐허 위에 건설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듯 우리 마음속에서 동막골의 꿈마저 버린다면 삶은 더없이 건조해지겠지요.
다행히도 사람들 마음속에는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듯 그에 대한 그리움은 남아 있습니다. 누구나 영화를 보면서 동막골 같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을 가질 것입니다. 가진 것 없이, 욕심 없이, 하늘이 낸 내 본연의 모습 그대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작은 불빛 하나마저 꺼지지 않도록 고이 지키고 살려내는 일입니다.
비록 서럽도록 힘든 세상살이일지라도 그 빛 하나가 우리를 언젠가는 구원해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사족 하나, 이 영화를 일각에서는 보안법 위반 운운하며 용공성이 있다고 딴지를 거는가 봅니다. 그래서 검사분들이 단체 관람해 보기로 했다나, 어쨌다나.... 하여튼 웃기는 세상입니다. 국민들 심심하다고 이렇게까지 배려해 줄 필요는 없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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