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

샌. 2005. 9. 14. 13:41


 

어제는 비가 많이 내렸다. 중국으로 들어갔던 태풍 '카눈'이 서해로 빠져나오며 소멸되었으나 남아있던 비구름이 한반도를 지나간 탓이다. 시내에 볼일을 보러 나갔는데 우산을 썼지만 비로 흠뻑 젖었다.

 

마침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키아로스타미 사진전 <바람이 또 나를 데려가리>를 보았다. 키아로스타니는이번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이란의 영화감독인데 예술성 있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신문 기사를 보고 전시회에 가봐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이번 사진전의 주제가 '길'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황량해 보이는 산야를 배경으로 날아가는 철새들의 흑백사진이 시선을 끌었다.

 

인생을 나타낼 때 '길'만큼 적당한 이미지도 없는 것 같다. 길은 설레임이기도 하고 덧없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꼬불꼬불 구부러지며 끝없이 이어진 길은 우리의 힘겹고 소중한 인생 행로를 나타낸다.

 

처음 사진을 배울 때 내가 찍고 싶었던 소재는 '길'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재능이 따라주지는 않지만 좋은 길 사진 한 장 찍어보고 싶은 욕심은 있다.

 

이번 사진전에서는 흑백사진의 아름다움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사진들은 눈 덮인 산야에 서 있는 겨울나무들을 찍은 것과 들판과 산으로 나있는 길을 찍은 두 종류였다. 길 사진들은 소품이었지만 간결한 화면에 담긴 이미지가 애틋한 그리움을 불러일으켜서 나에게는 훨씬 더 좋게 보였다. 외국 풍경이지만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친근한 풍경들이었다.

 

키아로스타미가 담은 길은 인간의 발이 자연스레 만든 곡선의 흙길이다. 그 길은 언덕을 만나면 돌아가고 강을 만나면 쉬어가는 그런 길이다. 현대의 도로 같이 강을 건너뛰고 산을 끊는 직선의 폭력의 길이 아니다. 그래서 착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부르고 싶은 길이다. 고향 같은 포근함이 느껴지는 길이다. 키아로스타미의 길을보면 꼭 강을 닮아있다. 그만큼 자연스럽다는 뜻일 것이다.

 

그의 사진을 보며 나는 저 길의 어디쯤에서 어떤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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