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맑고 따스한

샌. 2005. 3. 29. 14:40

지난 겨울에 언 수도관이 아직 녹지 않았습니다. 수도 펌프에 전원을 넣으니 해소병 환자의 가래 끓는 소리가 납니다. 중간 어딘가에 관이 막혀 있어 물이 소통되지 못하니 펌프도 힘이 드는가 봅니다. 누런 황토물이 펌프의 이음새 사이로 줄줄 새나옵니다.

 

이것도 이젠 연례 행사가 되어 그런가 보다 싶습니다. 그러나 내주까지 이 지경이 될까 걱정입니다. 생활하는 것은 둘째치고 내주에는 꽃과 나무를 심어야 하는데 물이 없으면 일에 지장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옆의 동료와 웃으며 얘기를 나누었지만 정말 '무자식이 상팔자'입니다. 뭔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터를 통해 실감하고 있습니다. 동료도 지리산 자락에 터가 있는데 이번 겨울에 상수도관이 터져서 그로 인한 누수로 수도비가 20여 만원이 나왔다고 푸념입니다. 겉으로는 투덜대지만 그래도 얼굴에 웃음을띌 수 있는 것은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배우는전원 학교가 주는 행복과 정신적 만족감 때문일 겁니다.

 

요사이는 '맑고 따스한' 이라는 말이 자주 떠오릅니다.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고 누가 묻는다면 지금 같으면 이렇게 대답할 것 같습니다. "나는 맑고 따스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맑은 거울이 세상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비추듯, 맑은 마음이란 세상을 존재하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나와서 우리는 세상이 가르쳐 주는 가치관에 무의식적으로 물들어 버립니다. 또 일상의 반복되는 사고나 습관에 의해서 어느덧 정형화된 틀 속에 갇히게 됩니다.

 

맑은 마음이란 존재의 본바탕으로서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것은 열린 마음이고, 기존의 지식이나 배움의 틀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맑다는 것은 세상 안에서 깨끗하게 산다는 이상의 의미입니다. 맑다는 말 속에는 세상을 초월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욕심내는 것이 언감생심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맑은 사람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런데 맑음 만으로는 너무 찬 느낌이 드는군요. 나는 맑음과 동시에 따스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따스함은 가슴 속에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나를 돌아보면 따스한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금방 알아챕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유전자적으로 따스함과는 거리가 멀게 진화되어 왔다고 나는 믿습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와도 마찬가지로 똑 같이 따스하게 대할 수 있는 능력은 나에게 없습니다. 더구나 만나기 조차 싫은 사람의 경우라면 말 할 필요도 없겠지요. 아니면 위선이든지요.

따스한 봄볕이 온 대지를 비춥니다. 봄볕은 차별이 없습니다.

 

구석 구석 찾아가 잠자고 있는 모든 생명에 따스한 손길을 내밉니다. 그것은크지만 동시에 작고도 세밀한 힘입니다. 따스함이란 이런 봄볕과 같은 부드러움이겠지요. 옳다고 해서 사물을 재단하고 가르고 심판한다면, 그래서 대립과 갈등을 일으키고 힘으로 밀어붙이기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길가는 나그네의옷을 벗게 만든 것은 추위도 거센 바람도 아닌 따스한 봄볕이었음을 다시 생각합니다. 개울가의 조약돌을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 또한 부드러운 물결인 것이지요. 그래서 따스함이란 부드럽지만 가장 강한 힘입니다. 세상을 지혜롭기 살기 위해서 나는 또한 따스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마음에는 온갖 지저분한 것들로 가득하고, 바로 옆의 사람에게 조차 온기가 전해지지 않는 차가운 가슴을 가진 덜 떨어진 인간이 괜히 입으로만 좋은 말들을 나불대는 것 같아 면구스럽기만 합니다. 실천이 따르지 않는 관념적인 것을 제일 싫어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이런 진흙탕 같은 삶이기 때문에 순수함과 따스함에 대한 바람이 더욱 강렬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더욱 맑고 따스한 사람 되기를 동경합니다.

 

발 밑을 보며 걷다가 고개를 들면 내 머리 위에 별이 빛나는 하늘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날개가 없어 비록 하늘로 날아오를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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