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모든 것이 꿈이었다

샌. 2004. 6. 22. 18:32

옆의 동료가 가평에다 자신의 전원생활을 위한 터를 구했다.

폐농가가 포함된 땅인데 은행나무, 전나무 등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너무 좋다고, 며칠 전에 등기까지 나왔다고 말하는 목소리에는 잔뜩 기쁨과 설레임이 들어 있었다.

그 말을 들으니 불현듯 수년 전의 내 경험이 떠올랐다.

터와 처음 만났을 때 한 마디로 뿅하고 갔기 때문이다. 지금의 동료와 마찬가지로 머릿 속에 그려지는 아름다운 미래의 꿈으로 가슴이 벅찼다. 세상의 모든 것을 얻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만남도 마찬가지이리라.

처음 만났을 때 쇠가 자석에 끌리듯 관심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러 번 만나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관계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을 보통 인연이라고 얘기한다. 불가에서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정말 이 사람이나 이 땅과는 전생에 무슨 특별한 인연이라도 있었지 않나 하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젊었을 때는 그런 해석을 경계했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지금은 '이것도 다 인연이었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첫 만남의 흥분과 설레임은 차차 실망으로 변해 간다.

부부가 되기까지 뜨거운 연애 기간을 경험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면 상대방에 대해 속속들이 알게 되고, 전에는 예쁘게만 보이던 것들이 어느새 단점으로 변해 속을 썩인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첫 만남의 감정이 환상이었고, 진짜 사랑은 상대방의 결점까지도 포용하고 이해하게 되는 부부로서의 생활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결혼을 하고 보니 모든 것이 환상이었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누구나 느끼는 것이라 믿는데, 바로 이렇게 꿈이 깨어지는 순간에 사랑과 애정이 솟아나며, 두 사람 사이에 진정한 부부의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내 경험으로 볼 때 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얘기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좋게만 보였던 첫 만남은 돌이켜보니 눈에 콩까지가 끼여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하루 하루 지나며 오가다 보니 보이지 않았던 터의 심각한 문제들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그 문제들을 해결하느라고 노심초사했던 날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일부는 해결되고 일부는 아직 그대로 남아있지만 내 속을 썩인 생각을 하면 이 터가 차라리 없었더라면 하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지금부터라는 것을 또한 믿는다.

앞으로 살아갈 수록 터의 진실된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고, 호오의 감정을넘어서 터와맺어지는 관계야 말로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멀리서 바라볼 때는 아름답고 좋았던 것이 막상 내 손에 들어오는 순간 별 볼 일 없는 대상으로 전락하는 경험은 그 외에도 많았다.

'막상 내 것이 되고 보니 모든 것이 꿈이었다.'

오늘새 땅을 구입한 동료가아름다운 미래의 꿈을 그리는 것을 보면서 내 마음 한 켠에서 모락 모락 일어나는 이런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겪는 과정일 것이다.

동료가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이루어 나가길 빌어본다.

훗날 만나게 된다면 내가 그 때 마음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했었노라고, 막상 그 말을 입에 낼 수는 없었지만 지금 생각은 처음과 어떻게 달라졌느냐고 물어 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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