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순수를 꿈꾸며 / 블레이크

샌. 2003. 11. 24. 14:22


한 알의 모래알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의 손바닥 안에 무한이 있고
한 순간 속에 영원이 있다.

새장에 갇힌 한 마리 로빈새는
천국을 온통 분노케 하며

주인집 문 앞에 굶주림으로 쓰러진 개는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

쫓기는 토끼의 울음 소리는
우리의 머리를 찢는다.

종달새가 날개에 상처를 입으면
아기 천사는 노래를 멈추고.......

-- W. Blake / Auguries of Innocence 중에서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A robin redbreast in a cage
Puts all Heaven in a rage.
A dog starv`d at his Master`s Gate
Predicts the ruin of the State...
Each outcry of the hunted hare
A fibre from the brain does tear.
A skylark wounded in the wing,
A cherubim does cease to sing.....


갇힌 새,굶주리는 개, 쫒기는 토끼, 상처입은 종달새.....
이런 것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시는 앞 부분의 두 구절이 유명하지만 나는 도리어 뒷 부분에서 더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
`주인집 문 앞에서 굶주림으로 쓰러진 개는 한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
이 구절은 특히 나에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논리적으로는 거창한 비약이지만 생명의 원리란 단순할 수도 있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
우리가 미물이라고 부르며 하찮게 여기는 것 조차 그것의 존재 의의는 이 우주만큼 클 수도 있다.
생명에 대한 폭력이나 무관심은 하늘을 슬프게 한다.
생명보다 더 우선시될 가치는 없다. 어느 생명도 다른 생명을 침해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이 지상에서 인간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은 문명에 비례하여 증가되고 있다. 넘치는 노획물을 쌓아 놓고는 약탈의 잔치판을 벌이고 있다.
산은 동강나고 생명은 쫒겨난다.
부자들 문 앞에는 굶주리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쫒기는 토끼의 울음소리는 더 커지고, 종달새는 더 이상 노래하지 못한다.

그것은 자해 행위일 뿐이다.
눈 앞의 이익은 달지만 그 결과는 쓸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늑대와 사자의 울부짖음이 인간의 영혼을 지옥에서 건져 올릴 것이다.
방황하는 들사슴이 인간의 영혼을 해방시켜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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