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유안진의 詩 두 편

샌. 2003. 12. 12. 10:37
슬퍼지는 날에는
어른들아 어른들아 아이로 돌아가자
별똥 떨어져 그리운 그곳으로 가자
간밤에 떨어진 별똥 주우러 가자

사랑도 욕스러워 외로운 날에는
차라리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물어보자
개울가의 미나리아재비 물봉숭아 여린 꽃이
산기슭의 패랭이 엉겅퀴 산난초가
어째서 별똥 떨어진 그 자리에만 피는가를

어른들아 어리석은 어른들아
사는 일이 참말로 엄청 힘들거든
작고도 단순하게 경영할 줄도 알아야지
작아서 아이같은 고향 마을로 가서
밤마다 떨어지는 별똥이나 생각다가

엄마 누나 무릎 베고 멍석자리 잠이 들면
수모도 치욕도 패배도 좌절도
횃불꼬리 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
찬란한 별똥별이 되어주지 않을꺼나

< 별똥 떨어져 그리운 그곳으로 / 유안진 >


문득 너무 오래 사람이었구나
아장걸음 걸어오는 새벽 봄비에
미리 젖어 촉촉하게
사람 아닌 무엇이고 싶구나 오오랜만에

산짐승의 어린 새끼
외따로 눈을 뜨는 초목의 첫싹같은
풋것이 약한 것이 고운 것이 되어서
난생 처음 보는 사람 구경에
놀라 넋이 빠진 오줌싸개라도

여름 폭풍우 아니면 겨울 눈보라였던 과거에서
그 무슨 알에서 갓 깨어난
애버러지라도
그 눈망울 속 무한 숙맥이고 싶구나

< 홀림 / 유안진 >


욕망을 버리고
습기(習氣)도 잠재우고
그리고 온갖 앎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래서
갓 태어난 송아지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 때는
온 창조계가 추는 환희의 춤을 볼 수 있을까.....
그 리듬에 맞추어 같이 춤 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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