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샌. 2003. 12. 18. 13:58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 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 때 그 사람이
그 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그래도
인생은 고단하고 쓸쓸하고 힘들다.
지금 이 자리가
꽃봉오리임을 알아채기엔 내 눈은 가려져 있고 귀는 멀었다.

그러나
어떤 아픔일지라도 지나고 보면,
내곁을 떠나 사라진 것들은 아득한 그리움만 남긴다.

나는 왜 늘상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일까?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는 것일까?

더 사랑하지 못했음을
더 진하게 눈물 흘리지 않았음을
더 따스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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