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꿈 / 서홍관

샌. 2003. 12. 23. 12:36
나에게는 꿈이 하나 있지

논두렁 개울가에
진종일 쪼그리고 앉아

밥 먹으라는 고함 소리도
잊어먹고

개울 위로 떠가는
지푸라기만 바라보는

열 다섯 살
소년이 되어보는

 

< 꿈 / 서홍관 >


중학교 때 교장 선생님은 월요일 아침 조회 시간이면 웅변조로 자주 강조하셨다.
"Boys, Be ambitious!"
다른 얘기도 많이 하셨을 텐데, 시간은 모든 걸 걸러내고 오직 하나만 남겨 놓았다.
"야망을 가져라!"

스피커를 통해 찌렁 찌렁 울리던 그 소리는 늘 나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당시의 나는 야망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시골뜨기였다. 그리고 이상하게 별로 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또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꿈이나 희망도 대부분 낯 설었다. 내 능력 밖인 것 같았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다.
가끔씩 무엇이 되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일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일시적인 현상으로 그친다. 구체적인 영상으로 잡히는 것은 없다.
출세를 한다거나, 돈을 많이 벌려는 것은 애초부터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던 꿈 하나가 언제부턴가 솔솔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생긴 형상이 이 詩에 나오는 열 다섯 소년을 꼭 닮았다.
그 놈이 지금나를 세상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자꾸 허방에 빠지게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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