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시끄러운 중국 사람들 목소리로 잠을 설쳤다. 태산 일출을 보기 위해 4시 모닝콜이 되어 있었으나 이미 그 전에 잠이 깼다. 문을 열어서야 왜 그렇게 시끄러웠는지를 알았다. 호텔 복도와 로비는 온통 텐트로 가득 차 있었다. 산을 올라온 사람들의 임시 숙소였다. 더 놀라운 광경은 호텔을 나섰을 때였다. 사람들이 끝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일출을 보기 위해 밤새 태산을 걸어 올라온 행렬이었다.
인민군복 같은 두꺼운 코트를 걸치고 꾸역꾸역 정상으로 밀려 올라가는 광경은 나그네의 눈에는 낯설고 기이했다. 귀기(鬼氣)마저 서리는 풍경이었다. 종교적 순례 행렬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일부는 그냥 길바닥에서 비박을 하고 있었다. 더구나 대부분이 젊은이들이었다. 어떤 두려움마저 느껴졌다. 6.25 때 인해전술로 밀고 들어온 중공군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했다. 낮에는 볼 수 없던 중국인의 힘을 보는 듯 했다. 태산은 중국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일까?
태산 입구. 여기서부터는 셔틀버스를 타고 중천문까지 오른다. 거기서부터는 케이블카가 정상까지 연결된다. 돈만 있으면 힘 하나 들이지 않고 태산 정상까지 오르는 것이다. 순전히 걸어서 오른다면 예닐곱 시간이 걸린다.
태산 등산 시작점. 우리 일행 열 명은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넷과, 걸어서 올라가는 여섯으로 나누었다. 앞에 보이는 계단을 따라 가면 두 시간 정도면 정상에 닿는다.
이런 식의 계단이 끝까지 계속된다. 그러려니 하고 오를 수밖에 없다.
중국 사람들, 바위에 글 새기기 좋아하고, 빨간색도 무지 좋아한다. 태산을 천하제일명산(天下第一名山)이란다. 중국인 특유의 과장법으로 이해해야 할까? 경치만 본다면 우리나라에 이 정도의 산은 널렸다. 다만 옛 황제들이 꼭 태산에 올라 어떤 의식을 치렀다니 역사적 의미가 있는 산임은 틀림 없다. 한무제는 다섯 번이나 태산을 찾았다고 한다.
사람 구경하느라 계단길에 지칠 틈도 없다. 중국인들은 대부분 평상복에 슬피퍼나 운동화를 신고 오른다. 심지어는 구두를 신은 사람도 있다. 등산화를 신은 건 우리밖에 없다. 중국에는 아직 등산문화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내륙은 평원이지 산이 거의 없다. 건강의 개념으로 산을 찾는 건 그들에게는 먼 이야기다.
위로 올라갈수록 운무가 가득해 구름속을 걷는다. 정상에 가까이 왔지만 주변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정상 부근에는 호텔을 비롯한 가게들, 사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천가(天街)라고 부른다. 도가 사원 벽하사(碧霞寺)를 구경했다. 중국 산악건축의 걸작이라는데 잘 보이지 않았다.
중국 5위안 화폐에 나오는 '五嶽獨尊'의 현장이다. 중국에서 오악(五嶽)은 태산(泰山), 황산(黃山), 항산(恒山), 숭산(嵩山), 화산(華山)을 일컫는다. 그중에서도 태산이 으뜸이라는 것이다.
많은 기념물과 비석들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이 무자비(無字碑)가 눈에 띈다. 높이가 5.2m나 되는데 글씨가 하나도 없다. 한무제가 태산에서 봉선의식을 행할 때 세운 것이라고 한다. 거만일까? 겸손일까?
태산(1545m) 정상. 주위가 보이지 않으니 오직 이 표식만으로 정상임을 안다. 주위는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 산 꼭대기를 이렇게 인공 시설물로 덮는 발상은 우리와는 다르다. 자연을 대하는 기본 인식에 차이가 있지 않나 싶다.
우리가 묵은 호텔 이름이 '선거(仙居)'호텔이다. 태산 꼭대기에서 하룻밤을 자다니....
다음날 새벽, 일출을 보러 밤새워 태산을 오른 사람들은 길은 가득했다. 구름은 더 짙어져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관일봉(觀日峰)까지 갔다. 신기한 중국인들의 모습만 구경했다.
아침이 되어도 올라오는 사람들은 여전했다. 인구가 많긴 많은 나라다. 버스 안에서 J가 말했다. 옛날에 모택동이 이렇게 큰소리 쳤다고 한다. "하루에 우리를 50만 명씩 죽여봐라. 우리 인민이 없어지는데 350년이 걸린다."
남천문의 아침.
아래로 내려가니 조금씩 시야가 트였다.
태산의 모습도 그제야 조금씩 드러났다.
한참을 내려와서 뒤돌아 본 길. 계곡을 따라 계단이 이어져 있고. 멀리 가운데가 남천문이다.
산 위에서 쓰는 물건은 이렇게 사람들이 져서 나른다. 고달픈 인생의 무게가 느껴져서 안스러웠다.
1박2일의 태산 등정을 마치고 다시 연태로 돌아간다. 태산에 들었던 내내 흐리고 구름속이었다. 태산에서의 일출과 호쾌한 전망은 상상으로 그쳤다. 그러나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의 그 태산에 오를 줄 어찌 알았으랴.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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