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청첩장

샌. 2011. 8. 20. 09:04

‘청첩장(請牒狀)’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결혼이나 좋은 일에 남을 초대하는 글발’이라고 나와 있다. ‘첩(牒)’이라는 한자가 편지나 서찰의 의미를 갖고 있으니 초청하는 글이 청첩장의 원뜻이다. 그런데 ‘첩’과 ‘장’은 중복되는 의미가 있으니 그냥 ‘청첩’이라 해도 같은 뜻이다.

딸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보내고 있다. 우편으로 부치기도 하고 직접 대면하여 전하기도 한다. 전화를 걸고 소식을 알리고 주소를 묻는 일을 여러 군데 해야 하는데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다. 우선 누구에게 청첩장을 주어야 하는지 목록을 만드는 게 만만치 않다. 이 사람한테 보내면 괜히 부담을 느끼지 않을까, 실례가 되지 않으려면 상대편 마음까지 헤아려야 한다. 반대로 연락을 하지 않아 섭섭해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심리적 부담을 느끼는 게 청첩장이다. 아무리 친하다고 하지만 남의 귀한 휴일 시간을 뺏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가진 것이 없던 옛날에는 서로 조금씩 모아서 큰일을 치르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의 부조문화였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는 그 의미가 좀 변질된 것 같다. 축의금을 하게 될 때는 망설일 때가 많다. 얼마를 해야 적당한 인사치레가 될까를 고민한다. 받는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돈 액수로 사람을 평가하게 되고 서운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남발하는 청첩장이나 축의금이라는 현재의 결혼문화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하객이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문제다. 어떤 결혼식에서는 축의금을 내는데 줄을 서야 한다. 혼주 손 잡아보기도 어렵다. 그런 데서는 짜증이 난다. 일반 예식장이라면 북새통이 더 하다. 거기에 더해 만세삼창을 한다거나 신발로 돈을 거둬오게 하는 등의 경박한 짓을 신랑 신부에게 시키면 바라보기도 괴롭다. 반대로 하객이 적어 썰렁해도 잔칫집 분위기에 맞지 않는다. 이러저런 체면을 고려해야 하는 게 결혼식이다.

결혼식이 신랑 신부 중심으로 바뀐다면 이런 문제가 좀 개선되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결혼식은 부모 중심의 행사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양가 부모의 지인들이다. 그러나 초대하는 사람을 신랑 신부 중심으로 한다면 식이 훨씬 간소화 될 것 같다. 최소한도 신랑 신부를 아는 사람들이 하객이 되어야 한다.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봉투를 내밀고 혼주와 눈도장을 찍고는 식에는 참석도 안 하고 가버린다.

나는 자식 결혼식을 친척만 초대해서 간소하게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때가 되니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사회생활에서 관례를 무시하고 살아가기는 어렵다. 더구나 결혼식은 양가에 관계된 문제다. 내 고집을 부리기는커녕 사돈네 눈치를 살펴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말은 결혼식에서 꼭 어울리는 말이다.

청첩장을 보내고 건네줄 때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나중에 갚으면 된다고 하지만 그건 그때 문제고 당장은 마음이 불편하다. 양가 사이에도 혼수 등으로 서로 의견이 맞지 않으면 스트레스다. 부수적인 데 신경 쓰지 않고 결혼하는 신랑 신부가 행복한 결혼식이 될 수는 없을까, 결혼식을 준비하다 보니 주객이 전도된 일들을 많이 본다. 우리는 겉치레와 물질적인데 너무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 같다.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펌] 당신들의 하나님  (0) 2011.08.29
당황과 황당  (2) 2011.08.22
눈비를 맞으며 자유롭게 자라게 하라  (0) 2011.08.07
수돗물을 안전하게 마시는 법  (0) 2011.07.31
비에 젖은 한 달  (1) 2011.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