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눈비를 맞으며 자유롭게 자라게 하라

샌. 2011. 8. 7. 09:55

얼마 전에 SBS TV에서 ‘마지막 자연인’이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으로 산 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나도 우연히 그 내용을 볼 수 있었다. 장면 중에 재래식 화장실의 똥을 먹는 개가 잠시 비쳤는데 그걸 두고 일부 시청자들이 동물 학대라며 방송국에 항의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급기야는 산골 오두막으로 동물보호단체에서 찾아가 호들갑을 떨었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개나 닭은 모두 놓아 먹였다. 방에 동생이 똥을 싸면 할머니가 “도꾸, 도꾸”하고 개를 불렀다. 그러면 어디선가 비호 같이 달려와서 깨끗이 처리했다. 골목길에 아이들이 눈 똥도 모두 개들의 몫이었다. 개가 똥을 먹는 건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며 컸다. 그때의 개들은 대부분 똥개라 부르는 종류였는데 덩치고 컸고 힘도 좋았다. 발정기가 되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짝을 찾고 흘레를 붙었다. 그걸 보고 외면하고 훼방을 놓기도 했지만 개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행위였다. 부끄럽고 민망하게 여기는 건 인간의 생각일 뿐이었다.

요사이는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집안에서 개를 키운다. 심지어는 개를 한 식구로 여기고 사람하고 똑같이 대해준다. 미용실에도 가고 옷도 입힌다. 그것까지는 애교로 봐 줄만 하다. 그런데 개 짖는 소리가 이웃에 방해가 된다고 성대제거수술을 하는 모양이다. 또 발정기가 오는 게 귀찮아서 중성화수술인지 뭔지도 시킨다고 한다. 아무리 애완견이지만 개 입장에서는 죽을 노릇일 것이다. 짖지도 못하게 하고 생식도 못하게 하니 생물의 본능을 완전히 죽여 버린 게 아닌가. 이러면서도 가장 동물을 사랑하는 척 한다. 똥에 입맛을 들인 개가 똥을 먹도록 하는 게 동물 학대라면 이건 동물 타살이다.

똥을 더럽고 불결한 것으로 여기는 게 문명이 가르친 죄악이다. 똥은 음식물이 내 몸 안으로 들어가 전신공양을 하고 남은 찌꺼기다. 옛날 농경사회에서 똥은 농작물을 키우는 거름이 되는 귀한 존재였다. 오죽하면 바깥에서 볼 일을 보더라도 싸가지고 와서 집의 거름에 던졌다고 했겠는가. 그러나 현대문명에서 똥은 아무 쓸데가 없는 천덕꾸러기일 뿐이다. 하천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정화하는 데에 천문학적인 돈이 든다. 똥을 고맙게 생각할 여지는 커녕 개가 똥을 먹는다 하면 질겁을 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건 좋지만 너무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산 속에서 똥을 먹으며 자유롭게 크는 개와 좁은 아파트 실내에 갇혀 인간의 노리개가 된 개 중 어느 개가 더 행복하겠는가. 단지 똥을 먹는다는 이유로 불결하며 동물 학대라는 건 인간의 단견일 뿐이다. 도시의 애완견은 인간의 취향에 맞추어 철사로 몸을 동여매고 이리저리 배배 꼬이며 자라게 하는 분재와 흡사하다. 생물로서의 본성은 억제되고 인간의 심미안을 위해 길들여져 가는 처량한 신세로 나에게는 보인다. 철사를 풀고 눈비를 맞으며 자유롭게 자라게 하라. 외형을 변화시킨다고 나무의 본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사료나 영양제를 얻어먹지 못해 배가 고플망정 생물의 본성은 자유롭게 자라며 뛰놀기를 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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