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굶주리는 백성 / 정약용

샌. 2012. 11. 2. 12:39

1

 

우리 인생 풀과 나무와 같아

물과 흙으로 살아간다네.

힘써 일해 땅엣것을 먹고 사나니

콩과 조를 먹고 사는 게 옳건만

콩과 조가 보석처럼 귀하니

무슨 수로 혈기가 좋을쏘냐.

야윈 목은 고니처럼 구부러지고

병든 살은 닭 껍데기처럼 주름졌네.

우물이 있어도 새벽에 물 긷지 않고

땔감이 있어도 저녁에 밥 짓지 않네.

팔다리는 그럭저럭 놀리지만

마음대로 걷지는 못한다네.

너른 들판엔 늦가을 바람이 매서운데

저물녘 슬픈 기러기는 어디로 가나?

고을 원님이 어진 정치를 하고

사재(私財)로 백성 구휼한다기에

관아 문으로 줄지어 가

끓인 죽 우러르며 앞으로 나서네.

개돼지도 버리고 돌아보지 않을 것을

사람이 엿처럼 달게 먹는구나.

어진 정치는 기대도 않았고

사재 털기도 기대치 않았네.

관아의 재물은 꽁꽁 숨겼으니

어찌 우리가 여위지 않겠나.

관아 마구간의 살찐 애마(愛馬)들은

실은 우리의 살이라네.

슬피 울부짖으며 관아 문을 나서

두리번두리번 갈림길만 헤매네.

잠시 누른 풀 언덕에서

무릎 펴고 우는 아이 달래고

고개를 숙이고 서캐를 잡다가

두 눈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네.

 

2

 

크나큰 조화(造化)의 이치를

고금에 누가 알리.

많고 많은 백성들

여위고 병들어

말라서 굶어 죽고 허약해 쓰러지고

길엔 온통 떠돌이들이네.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오라는 데 없어

어디로 가얄지 끝내 알 수가 없네.

혈육도 돌보지 못하니

곤경을 만나 사람 도리도 못하누나.

큰 농사꾼도 거지가 되어

서투른 말솜씨로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는데

가난한 집에선 되레 하소연을 하고

부잣집에선 일부러 늑장을 부리네.

새라면 벌레를 쪼아 먹고

물고기라면 연못에서 헤엄치겠건만

얼굴빛은 비참하게 누렇고

머리칼은 헐클어진 실과 같네.

옛 성현은 어진 정치를 행할 때

홀아비 과부의 괴로움을 살펴야 한댔지만

홀아비 과부가 정말로 부럽다네.

굶어도 제 한 몸 굶는 것이니

딸린 식구 없다면야

온갖 근심 있을 리 있나.

봄바람이 단비를 데려와

초목이 무성하게 자라고

천지에 생기가 가득하니

이때야말로 백성 구휼해야지.

엄숙한 조정의 훌륭한 분들아

나라의 안위(安危)는 경제에 달렸다오.

고통에 빠져 있는 백성들을

그대들 아니면 누가 건지리.

 

3

 

누렇게 뜬 얼굴은 윤기가 없어

가을 되기 전에 시든 버들 같고

곱사등이처럼 몸이 굽어 걷지를 못해

담을 의지해 겨우 일어나네.

혈육도 돌보지 못하는데

어찌 남을 동정하겠나?

굶주림에 착한 마음을 잃어

약하고 병든 이를 보며 웃고 떠드네.

이웃 마을을 떠돌아 보지만

마을 풍속 예전 같질 않네.

부러워라 저 들판의 참새는

마른 나뭇가지 위에서 벌레는 쪼는구나.

부잣집엔 술이랑 고기도 많고

이름난 기생 불러 풍악도 울리고

태평세월을 흘겹게 즐기면서

장엄한 조정의 풍도(風度)라 하네.

교활한 백성들은 없는 말 하길 좋아하고

물정 모르는 선비는 시절 걱정이 많구나.

오곡(五穀)이 지천에 널렸건만

농사에 게을러 굶는 거라 하고

빽빽한 수풀처럼 많은 백성은

요임금 순임금도 모두 챙기기 어렵다 하네.

하늘에서 곡식이 비처럼 내리지 않고서야

무슨 수로 이 흉년을 구제할까?

다시 술병을 기울여 마시니

나부끼는 깃발에 봄날이 아득해지네.

골짜기엔 묻힐 땅 남아있나니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을 뿐이지.

오매초(五昧草)가 있다 해도

대궐에 바칠 필요는 없을 거야.

형제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데

부모인들 자애를 베풀겠나.

 

- 굶주리는 백성 / 정약용

 

 

이 시는 다산 정약용 선생이 1795년, 선생의 나이 34세 되던 해에 쓴 것이다. 전해에 정조의 은밀한 명을 받고 경기 지역을 순행하는 암행어사가 되어 백성들의 생활고를 직접 목격했다. 시에는 굶주리는 백성들에 대한 다산의 연민과 안타까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다산은 여느 선비들처럼 태평세월을 노래하거나 단순히 음풍농월하지만은 않았다. 현실을 직시하면서 부조리한 정치에 의한 백성들의 고통을 시로 그려냈다. 이는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가난한 백성에 대한 관심은 뒤의 유배 생활 동안에도 계속되었다.

 

다산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런 시는 시가 아니며,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으며, 아름다은 것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 하며,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그런 뜻이 담겨 있지 않은 내용의 시를 시라고 할 수 없다."

 

"세상을 걱정하고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서 항상 힘없는 사람을 구원해주고 재산 없는 사람을 구제해주고자 마음이 흔들기고 가슴 아파서 차마 그냥 두지 못하는 그런 간절한 뜻을 항상 지녀야 비로소 시가 되는 것이다."

 

다산이 생각한 시인의 본분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바루고, 세상을 걱정하고, 백성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데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지식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대한 눈과 귀는 닫은 채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유아적인 태도는 사람으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돌아보면 '교활한 백성'이나 '물정 모르는 선비'가 지금도 주위에 가득한 게 현실이다.

 

이 시 '굶주리는 백성'에는 조선 후기 서민들의 고달픈 세상살이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비단 조선 후기만이 아니라 우리 역사의 대부분 기간이 이런 수탈과 기아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싶다. 잘못된 정치에 대한 분노와 고통받는 백성에 대한 다산의 연민이 잘 읽힌다. 만약 정조와 다산이 힘을 합쳐 조선 사회를 개혁할 수 있었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근대의 아픈 상처인 일제 강점과 남북 분단, 민족 전쟁은 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으로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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