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샌. 2012. 12. 8. 08:59

영조 38년(1762) 윤5월 21일, 여드레 동안 뒤주에 갇혀 있던 사도세자가 죽었다. 왕인 아버지가 세자인 아들을 굶겨 죽이는 조선왕조 최대의 참극이 일어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덕일 선생이 쓴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는 사도세자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는 내용의 책이다.

지금까지는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이 세자의 죽음을 설명하는 중요한 사료였다. 세자빈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증언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중록>에서는 세자의 죽음이 영조의 이상 성격과 세자의 정신병이 충돌해서 빚은 비극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선생은 <영조실록>과 다른 자료들을 분석해서 세자가 정신병에 걸린 게 아니었음을 밝혀낸다. 도리어 성군의 자질을 지닌 인품을 지니고 있었다.

영조 31년(1755)에 나주 벽서 사건이 일어나고, 노론은 이를 계기로 소론파를 완전히 제거한다. 이 과정에서 세자는 옥사가 확대되는 걸 반대하며 소론을 옹호한다. 세자에 대한 노론의 불안과 의심이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노론의 영수는 세자의 장인인 홍봉한이었는데 그마저도 세자에게서 등을 돌린다. 세자빈 혜경궁 홍씨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나 사위보다 당론과 집안이 더 중요했다.

그 뒤로 사도세자는 완전히 고립된다. 영조 역시 세자가 지닌 정치적 견해, 무인적 기질, 말 없는 성품 등을 두려워하며 견제했다. 영조와 잠자리를 함께하는 왕후 김씨와 숙의 문씨도 끊임없이 세자를 비난했다. 소론이 몰락한 후 조정은 완전히 노론이 장악했다.

이런 와중에서 세자는 자구책으로 미행과 관서행을 결행한다. 왕권에 뜻이 없다는 신호였을 수도 있고, 미래를 위한 준비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이것이 비극적 최후를 앞당긴 셈이 되었다. 나경언이 세자를 고변하면서 영조는 세자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세자 주변에는 세자를 위해 변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운명의 날이 1762년 윤5월 21일이 밝았다.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결정적인 것은 영조의 의중이었다. 왜 그렇게 아들을 그렇게 미워했는지 책을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성격적인 결함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자가 죽은 뒤 영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미물도 불쌍히 여겨 부나비가 등잔으로 달려들면 손을 휘저어 내쫓았으며 개미도 밟지 않고 건너서 갔다." 그러나 영조만큼 많은 사람을 죽인 왕도 드물었다. 나주 벽서 사건으로만 사형당한 인물이 5백 명이 넘었다 한다.

또한 영조는 경종 독살에 대한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내적 콤플렉스가 권력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났는지 모른다. 15세의 사도세자에게 대리청정을 시키며 느낀 불안감이 아들에 대한 증오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권력 게임의 냉혹함을 다시금 깨달았다. 권력 앞에서는 자식이나 부모도 정적이며 제거 대상이 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의보다는 정파의 이익이나 가문 번영의 앞장이 역할을 했다.

조선은 왕조국가였지만 영조 시대에는 신하들에 의해 왕권이 좌지우지되었다. 조정을 장악한 노론은 자기들 멋대로 국정을 농단했다. 자기들 입맛에 맞는 왕을 골랐다. 왕의 입장에서는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반대 세력을 키워야 했다. 사도세자가 소론에 기운 것은 너무 강력해진 노론을 견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기득권의 위협으로 느낀 노론에 의해 결국 사도세자는 죽음을 맞았다.

선생은 사도세자가 당쟁의 와중에 희생되었다고 주장한다. 사도세자는 미치지 않았으며 친소론적이었고, 결국 노론의 견제를 받아 죽음에 이르렀다. 그리고 혜경궁은 사도세자 일로 친정이 몰락하자, 친정의 죄를 변명하기 위해 <한중록>을 지었다. 정통 사학계의 입장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이 책을 읽으면 선생의 견해에 충분히 납득이 간다. 그런데 그네들이 목숨 걸고 싸운 것이 과연 얼마나 민중을 위한 것이었을까? 그들이 꿈꾼 나라는 그들만의 나라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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