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새해를 맞아 동료들과 직장 상사의 집에 세배를 간 적이 있었다. 우리가 들어갔을 때 상사는 안방에서 TV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 여자 피겨 연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동계 올림픽 중계였다. 나오는 선수들은 모두 미끈한 몸매의 서양인이었다. 그걸 보며 우리는 동양인이 과연 저 무대에 설 수 있을지에 대해 설왕설래했었다. 더구나 한국인이 세계 피겨 무대에 설 수 있을 때는 언제쯤 될 건지에 대해서도 말을 나누었다. 아마 대부분의 예상이 회의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늘 세계선수권에서 김연아가 다시 우승했다. 총점 218.31로 새로운 기록을 세우며, 2위와는 무려 20점 넘는 차이가 났다. 한마디로 차원이 다른 연기였다. 실수나 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봤는데 다른 선수들과는 클래스가 달랐다. 몇 번 넘어졌더라도 우승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을 것이다.
월등한 기량으로 세계를 발아래 눕힌 인물이 김연아가 최초가 아닌가 싶다. 라이벌이 되는 선수도 없다. 더구나 피겨는 서양인이 독점해 온 종목이다. 우리의 동계 스포츠 현실을 생각하면 김연아 같은 선수가 나타났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제대로 된 빙상경기장 하나 없다. 그런 의미에서 피겨 퀸이라는 호칭도 부족하다. 아무리 봐도 이쁘고 고맙고 행복하다. 동시에 그녀가 감내해 냈을 각고의 시간의 무게가 아프게 다가온다. 지난 밴쿠버 올림픽 후 긴 공백 기간도 잘 극복했다.
시상식에서 태극기가 올라가고 캐나다 합창단원이 애국가를 부를 때는 가슴이 뭉클했다. 김연아 개인이 수십, 수백 명의 외교관이 한 역할 이상을 해냈다. 우리의 영웅이라고 할 만하다.
지난번에 미국에 갔더니 그 나라는 뛰어난 사람을 기리고 기념하는 게 관습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거리나 건축물 등에 사람 이름이 붙은 게 많았다. 반면에 우리는 성공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물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지 않는 풍토가 자발적인 존경심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젠 정당하게 얻은 부와 명예에 대해서는 찬사와 존경에 너무 인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인터뷰에서 자신이 우승한 결과 내년 소치 올림픽에 한국 선수가 세 명이나 피겨에 나갈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김연아는 말했다. 그녀는 빙상의 불모지에 찬란한 꽃을 피운 선구자다. 그렇다고 황무지가 옥토로 변한 건 아니다. 비록 이 황금 시기가 길게 이어지지 않을지라도 오늘 김연아의 연기를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영광이고 행복하다. 피겨 퀸 김연아,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