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을 것이다. 외할머니를 따라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간 적이 있었다. 남산 자락 후암동 친척집이었는데 결혼식이 있었는지 집안이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신기해서 내 또래 아이와 오리락내리락 하며 놀았던 기억이 희미하게 난다. 그러다가 굴러떨어져서 외할머니를 놀라게도 했다.
그때는 시커먼 몸통을 가진 칙칙폭폭 증기기관차가 객차를 끌었다. 쉴새없이 연기와 수증기가 뿜어져 나왔고 가끔씩 힘들다는 듯 목쉰 기적 소리를 토해냈다. 그것이 얼마나 좋은 구경거리였는지, 나는 객차 유리창문을 위로 열어놓고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는 우리를 끌고가는 철마를 구경했다. 옆으로 끝없이 스쳐 지나가는 풍경도 좋았다. 잠시만 그런 게 아니라 서울 가는 내내 바깥 구경에 넋을 잃었다고 후에 외할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래서 서울에 내렸을 때는 얼굴과 콧구멍이 새까맣게 되었다면서 웃으셨다.
지금도 나는 여행을 할 때면 창 밖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버스든 기차든 비행기든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자리에 앉으면 잠을 잔다. 그러나 나한테는 이동하는 과정도 여행의 일부다. 끊임없이 다가오고 지나가는 풍경에 저절로 매료되어 도리어 정신이 말똥말똥해진다. 본 관광보다도 차라리 이게 더 재미있다. 심지어는 비행기 안에서도 모니터에 날아가는 경로와 위치가 나오는 화면을 띄워놓고 그것만 쳐다본다. 거기에는 비행기의 고도, 속력 등 시시각각 변하는 정보도 나온다. 그런 걸 보는 것조차 재미있다.
내가 운전을 좋아하는 것도 이런 습성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멀리 있는 풍경이 다가왔다가는 무심하게 뒤로 흘러가는 그런 움직임이 무척 흥미롭다. 어떤 때는 미지의 우주를 항해하는 것 같은 착각에도 빠진다. 잠이 오거나 지루할 틈이 없다. 아마 내가 다시 직업을 가진다면 파일럿이나 아니면 트럭 같은 장거리 드라이버를 선택할지 모른다. 캐나다에서는 대륙을 동서로 횡단하는데 밤낮없이 달려 거의 일주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 길 위에서 고독한 드라이버가 되고 싶다.
캐나다에는 개가 보는 케이블 채널이 있다고 가이드가 말했다. 주인이 나가고 텅 빈 집에서 개 혼자 외로울까 봐 개가 좋아하는 화면이 나오는 TV를 틀어넣고 나간다는 것이다. 소파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TV를 보는 개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웃긴다. 그런데 개 전용 채널의 화면이 차를 타고 가며 찍은 단조로운 풍경이라고 한다. 움직이며 흘러가는 화면을 개는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개를 닮았다. 한국에도 그런 채널이 만들어진다면 즐겨보기에 추가시킬 채널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이다.
이번 여행은 일정이 상당히 고됐다. 미국에서는 거의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밤늦게 호텔에 들어갔다. 낮 시간 대부분은 버스로 이동하는데 소요되었다. 자연히 버스 안은 잠자면서 피로를 푸는 곳이 되었다. 그런데 하나 예외인 사람이 있었다. 창가에 앉아서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넋을 앗긴 사람, 그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개과인지 모른다. 유전자 검사라도 해봐야 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