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담씨가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구해 읽은 책이다. 자전적 에세이인 이 책은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솔직담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김담은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나 초등학생일 때 성남으로 이사했다. 전형적인 이농 가정이었다. 변두리 도시에서 사는 가난한 이농자의 생활은 궁핍했다. 그러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꿈을 키우면서 어렵게 학업을 계속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현실에 눈을 떴고 학생 운동에도 참여했다. 독서와 밑바닥 삶의 체험을 통해 세상을 알아갔다. 그러나 어디에도 깊이 몰두하지는 못했다. 결국은 고향으로 돌아간 부모님을 따라 다시 귀향했다. 낯선 고향이었지만 이웃과 숲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며 살아가고 있다. 고성은 남북 분단의 비극이 현존하는 곳으로 저자가 현대사의 아픔을 그려내고 싶어하는 무대다.
<그늘 속을 걷다>가 매력적인 건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삶을 대하는 진실성이 책을 관통하고 있다. '그늘'이라는 말대로 저자는 아웃사이더적인 삶을 살았다. 체질적으로 햇빛보다는 그늘에 관심이 많은 과가 있다. 나 역시 그런 부류라고 여긴다. 군중이나 이데올로기보다는 고독과 침묵을 좋아한다. 비록 나이는 15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두 책을 읽으며 저자와 깊게 공명했다.
책에 보면 80년대에 저자는 성남 집에서 전농동에 있는 대학을 다녔다. 그 시기에 나도 성남에 살면서 전농동에 있는 J여중에 다녔었다. 내 직장과 저자가 다닌 대학은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있었다. 어쩌면 같은 버스를 탄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 연결 고리를 발견하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또 하나 공유하는 장면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되던 때 저자는 중학생이었다. 당시 교실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가을소풍을 다녀온 뒤였을까. 아침 조회를 하기 위해 출석부를 들고 오신 담임선생님의 표정이 이상야릇했다. 그때 우리는 이미 뉴스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들은 뒤였다. 담임선생님은 쿨쩍거리며 울고 있는 우리들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그것은 분명 비웃음이었다. 경천동지할 소식에, 태어나서 한 번도 바뀐 적 없어 한 번 대통령은 영원한 대통령인 줄 믿고 자란 어린 학생들에게, 마치 하느님과 같이 영원불멸할 줄 알았던 바로 그런 대통령을 잃은 어린 학생들의 울음을 외면하는 그 해괴한 담임선생님의 태도는 영영 잊을 수 없었다. 반동분자의 표정이 꼭 그와 같을 것이라고, 적화야욕에 불타는 빨갱이 김일성도당을 쳐부수어야 한다는 강력한 애국심에 사로잡혀 있는 어린 학생의 마음을 이상하게 뒤흔들었다. 반 동무들은 울음을 우느라고 책상 위에 고개를 박고 있을 때, 반장이었던 나는 인사를 하기 위해 유일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선생님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자리에 일어나서 조례 인사를 마칠 때까지, 아니 그 뒤에도 두고 두고 그 웃음 섞인 얼굴은 무슨 상흔처럼 내 가슴에 남아 있었다. 왜 연약해 보이던 담임선생님의 얼굴에 그와 같은 쓴웃음이 떠올랐는지 그때는 몰랐다. 미소를 띤 선생님의 얼굴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왜 선생님은 우리와 함께 슬픔을 나누지 않는 것인지 서운하고 사뭇 안타깝기까지 했다. 며칠을 두고 텔레비전에서는 구슬픈 장송곡만 흘러 넘쳐 세상을 뒤덮었다. 지도자를 잃은 우리의 아픔도 아랑곳없는 북괴 김일성 괴뢰도당은 당장이라도 탱크를 밀고 내려와 전쟁을 일으킬까 봐서 지도자를 잃은 슬픔도 슬픔이려니와 그보다는 전쟁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크고 넓었다."
나에게도 그날 아침의 모습이 선명하다. 대통령의 사망 소식을 들은 뒤에 출근을 했다. 일차 충격이 지나고 나서 마음이 진정되고 난 뒤에는, 이제야 햇빛이 비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었다. 긴 터널을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인간적 연민이야 없진 않았겠지만 교무실에서도 그다지 애도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몇 년 전에 교장선생님이 술이 취해서 탄 택시에서 말실수를 해 경찰서에 끌려가서 결국은 사표를 낸 사건이 있었다. 박 대통령이나 체제를 비난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던 시절이었다. 교사들에게 존경받던 교장선생님이었는데, 드러내 놓고 표현은 못 했지만 다들 뭐 이런 개 같은 세상이 있나, 라고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아침 조회를 들어갔더니 저자가 쓴 그대로 교실 분위기는 침울했다. 일부 아이들은 고개를 들지 않고 있었고, 눈이 빨개진 아이도 있었다. 나는 모르는 척 싱글싱글 웃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였다고 지금도 생각된다.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이들을 속인 그들이 미웠고, 나도 부끄럽긴 마찬가지였다. 아마 그때 교실에 있었던 아이가 보았다면 나를 보고 꼭 저자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우리 선생님 왜 저래, 라는 표정이 역력했으니까.
저자가 왜 아직 유명한 소설가가 되지 못하고 있을까, 의아할 정도로 문체가 탐난다. 여자분이지만 여성색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연애와 결혼에 대한 얘기가 나오길 기다렸는데 전혀 없었다. 그러나 건조하고 탈색된 글이 오히려 서정적이면서 따스한 모성을 품고 있다. 저자는 <태백산맥>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이분이 그런 좋은 소설을 쓸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