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는 몰라
지금 산수유가 피었는지
북쪽 산기슭 진달래가 피었는지
뒤울안 회나무 가지
휘파람새가 울다 가는지
바퀴는 몰라 저 들판
노란 꾀꼬리가 왜 급히 날아가는지
바퀴는 모른다네
내가 우는지 마는지
누구를 어떻게
그리워하는지 마는지
그러면서 내가 얼마나 고독한지
바퀴는 모른다네
바퀴는 몰라
하루 일 마치고 해질녘
막걸리 한 잔에 붉게 취해
돌아오는 원둑길 풀밭
다 먹은 점심 도시락 가방 베개 하여
시인도 눕고 선생도 눕고 추장도 누워
노을 지는 하늘에 검붉게 물든 새털구름
먼 허공에 눈길 던지며
입에는 삘기 하나 뽑아 물었을까
빙글빙글 토끼풀 하나 돌리고 있을까
하루해가 지는 저수지 길을
바퀴는 몰라
이제 바퀴를 보면 브레이크 달고 싶다
너무 오래 달려오지 않았나
- 이제 바퀴를 보면 브레이크 달고 싶다 / 윤재철
퇴직하고 나서 달라진 것 중 하나가 차를 만질 일이 줄어든 점이다. 출퇴근 용도가 완전히 없어졌고 일상의 볼 일도 걸어서 다 되는 동네니 어떤 때는 한 달에 한두 번 핸들을 잡을 정도다. 나들이를 나가는 경우에 주로 이용하지만, 밖으로 싸돌아다니는 것도 별로 즐기지 않으니 요사이는 애마도 주인처럼 푹 쉬는 게 일이다. 그래서 이놈이 더 늙어 나를 태울 힘조차 없어지면 마굿간도 없앨 생각을 갖고 있다.
지인들 중에는 자가용 없이도 잘 살아가는 사람이 몇 있다. 젊었을 때부터 차 없이 산 사람도 있지만, 나머지는 은퇴 뒤에 차를 버렸다. 물어보면 차 없어도 별로 불편을 모른다는 대답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대중교통이 잘 갖추어져 있다. 그분들을 보면 자가용에 길들여진 내 의식이 부끄러워진다. 내 차 없이 어떻게 살아가, 라는 의문이 먼저 드니 말이다. 차를 버렸다는 건 분주한 삶에서 떠났다는 말이기도 하다. 실제 그분들의 공통점이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지는 게 아니라, 이젠 나도 브레이크를 달고 싶다. 시인의 말처럼 너무 오래 달려왔다. 인적 드문 산자락 작은 거처에서 흘러가는 구름에나 눈길 던지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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