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의심하라

샌. 2014. 5. 20. 09:01

"가만히 있으라!" 배는 계속 기울어가는데 선실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있으라는 말만 방송되었다. 어린 학생들은 그 말을 믿었고, 결국 삼백 명이 넘는 생때같은 생명이 수장되었다. 안타깝고 통분한 일이다. 갑판으로 대피하라는 말 한마디만 했다면 이런 억울한 희생은 없었을 것이다. 1시간이 넘는 시간이었으니 모두가 탈출하기에 충분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에 의심을 품은 사람이 어째서 한 사람도 없었을까? 이렇게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앞장선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까? 그렇지만 내가 인솔교사로 거기에 있었더라도 반대되는 선택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선장의 지시를 거역하고 아이들을 밖으로 나가게 할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더 큰 혼란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모험보다는 질서를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

 

호주에 살고 있는 교민 한 분이 쓴 글을 보았다. 만약 호주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했다면 백인들은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를 상상해 보았다는 것이다. 아마 세월호의 우리 아이들 같지는 않았을 것 같다고, 그들은 제각기 살려고 발버둥을 치고 무슨 짓이든 했을 것이라고 썼다. 세월호 참사는 교육이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무조건 지시에 따르는 것이 아니고 내 편에서 어떤 것이 합당한가를 따져보는 민주적 교육이 부족한 탓이 아니었나 하는 내용이었다.

 

"나가야 돼!"라고 외친 이가 한 사람만 있었더라도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질서와 신뢰가 아름다운 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될 때에만 해당된다. 잘못된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어리석다. 더구나 교활하고 사악한 자들의 사탕발림 말을 따라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분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히틀러 치하에서 유대인들은 악한 세력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부족했다. 그들은 고분고분 따르기만 했을 뿐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수백만 명이 죽었다.

 

일찍이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를 수없이 강조했다. 생각을 깊이 한다는 것은 세상의 가르침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그런가?'라고 묻고 의심하는 것이 생각이다. 권위, 법칙, 당위, 도덕, 모두 예외가 아니다. 우리 교육은 이런 게 부족했다. 생각하는 힘, 비판 정신을 길러주지 않았다. 어른 말을 잘 따르는 게 착한 학생이라고 가르쳤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한다.

 

이젠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세상의 진실을 보는 눈을 갖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부모와 교사부터 달라져야 한다. 의심 없이 살아왔던, 또는 알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던 내 삶을 성찰하고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내 가족을 아무리 보호하고 싶어도 사회 자체가 불안하고 위험하다면 소용이 없다. 올바른 사회 속에서만 안전한 삶이 가능하다. 관심을 가족에서 공동체로 넓혀야 하는 소이다. 폐쇄적 가족주의로는 건강한 대한민국이 될 수 없다.

 

지금부터라도 진지한 고민이 시작되어야 세월호의 교훈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체제의 온순한 양으로 기르는 교육은 버려야 한다. 그 변화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아니오!" 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늘어나야 한다. 부모가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아이들은 전처럼 학교와 학원 사이를 오가는 꼭두각시가 될 것이다. 세월호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세월에 묻혀 사라질 것이 두렵다. 의식은 변하지 않은 채 시스템만 바꾼다고 세상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생각할 줄 아는 건강하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첫걸음은 이 말에서 시작될 것이다. "의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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