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이나 바둑 등 승부가 걸린 경기에서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을 흔히 쓴다. 서로 비슷한 수준일 때는 실력차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지 않는다. 이기고 지는 게 실력보다는 운에 더 좌우된다. 야구 시합을 보아도 잘 때린 공이 야수 정면으로 날아가 더블아웃 당하기도 하고, 빗맞은 공은 행운의 안타가 되기도 한다. 작은 변수 하나가 시합을 뒤흔드는 것이다. 그래서 5전3승제, 또는 7전4승제처럼 여러 경기를 치러서 우연의 요소가 개입할 여지를 줄인다.
인생살이는 더 복잡하고 우연의 요소가 많다. 우연히 일어난 작은 사건 하나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 짓고 생사를 가름하기도 한다.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도 어떤 사람은 출항이 늦어지니까 비행기로 간다고 배에서 내렸다. 순간의 선택으로 생명을 구했다. 버스 사고가 났는데 깜빡 조느라고 내릴 정거장에서 내리지 못해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작은 행동 하나가 생과 사를 가르는 결과로 이어진다.
어떤 사람은 운명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우연이라고 한다. 그 무엇이든간에 인생은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요소로 가득하다. 인생에도 운칠기삼의 법칙이 적용된다. 인생길 역시 불확실성의 안개에 잠겨 있다. 살다가 무슨 일을 만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 결과가 좋으면 행운이라 하고, 나쁘면 불운이라고 한다.
고난 역시 대부분 내 의지와는 관계 없이 찾아온다.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고통을 일부러 맞아들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인생살이에서는 고통이 떠나지 않는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자기 뜻대로 인생을 꾸려 간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생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작용하다. 인간의 두뇌로는 헤아릴 수 없으니 운명이라는 말을 쓰는지 모른다.
중국 고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한 선비가 변변치 못한 자들은 버젓이 과거에 급제하는데, 자신은 늙도록 급제하지 못하고 패가망신하자 옥황상제에게 그 이유를 따져 물었다. 옥황상제는 정의의 신과 운명의 신에게 술 내기를 시키고, 만약 정의의 신이 술을 많이 마시면 선비가 옳은 것이고, 운명의 신이 많이 마시면 세상사가 그런 것이니 선비가 체념해야 한다는 다짐을 받았다. 내기 결과 정의의 신은 석 잔밖에 마시지 못하고, 운명의 신은 일곱 잔이나 마셨다. 옥황상제는 세상사는 정의에 따라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운명의 장난에 따라 행해지되, 3푼의 이치도 행해지는 법이니 운수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로 선비를 꾸짖고 돌려보냈다.'
운명의 장난에 따라 인생사가 결정되지만 그래도 3푼의 이치는 행해지는 법이니 너무 원망하지 말라는 뜻이다. 인간은 최선을 다할 뿐, 나머지는 하늘의 뜻에 맡기면 된다.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다. 모든 건 운명의 신이 허락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하니 비관도 낙관도 말라. 무슨 일에건 인간의 몫은 30%에 불과하다는 걸 받아들이면 인생에서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운칠기삼이 전하는 겸손의 마음이다.